기해(己亥)아침의 귀한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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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己亥)아침의 귀한 축복
  • 광장21
  • 승인 2019.01.07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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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己亥)아침의 귀한 축복

정상현/수필가

 

                

와! 새해의 붉은 해다.

정확히 1월 1일 07: 41분 우리 동네에서 매년 치르는 금병산의 새해 해맞이 행사다.

불끈 솟는 해가 더없이 기운차 보인다. 평소와 다름없는 해 솟음이건만 왠지 자꾸 특별한 해맞이로 생각되는 것은 새해 첫날이라는 들뜬 기분 때문이리라

  정치권의 갈팡질팡하는 일관성 없는 말놀음 때문에 복잡하고 시끄럽던 무술(戊戌)년이 빨리 가고 새로운 해에 새로운 사회를 맞고 싶은 마음은 비단 나 혼자 겪는 심정만은 아니었으리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귀마개, 두건, 목도리, 오리털점퍼 등 동장군을 이겨야하기에 완전무장을 한 후 집을 나섰다. 주위는 칠흑같이 까맣다. 차를 타고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꽤 많은 차들이 주차하느라고 바쁘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마치고 아무 생각 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행하는데도 주위는 조용하다 시끄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아마 모두들 나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솟는 해를 보고 소원을 빌어보는 바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약 1시간 남짓 산을 오르니 온 몸에 땀이 흥건하다. 완벽한 완전무장을 한 탓인가?

 산 정상(頂上)에 오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전망이 좋은 장소를 점거하고 카메라를 설치하는 사람, 나뭇가지를 꺾어 시계(視界)의 장애물을 치우는 사람, 낙엽을 주어 깔개를 만드는 사람 등 모두들 곧 솟아오를 기해(己亥)의 힘찬 첫 해를 맞을 준비에 열심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여러 사람들과 좀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행여 다른 사람과 부딪혀 빌어보고자 하는 소원의 순수함에 티가 섞일 것 같아서이다.

 우리 서로는 마치 예배당에서 기도하기 직전 마음을 다스리는 느낌으로 해 솟을 방향으로 자세를 잡고 호흡과 마음을 다시 정리한다.

“여보 당신은 새해에 무었을 소원 하고자 하는가요?”

답변이 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능청을 떨어본다. 아마 나에게는 비밀로 하는 작은 소망이 있는 듯하다. 더 이상 물으면 자존심에 흠집을 내는 것 같아 묻지 않기로 하고 나도 이제 해 맞을 자세를 잡았다, 출산 전 양수가 먼저 터지면서 고귀한 생명이 잉태되듯이 해 솟음 주변이 온통 붉게 물들고 해 머리가 약간 솟은 듯한데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동시에 카메라 셔터소리 또한 요란하다.

조선시대 석학자인 최남선은 호미곶의 일출을 일러 ‘조선 최고의 일출’이라 했지만 오늘 내가 이곳 금병산에서 맞는 해맞이도 그에 못지않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떠오르는 해를 보며 우선 감사함을 기도했다.

첫째, 나와 아내가 건강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꾸려가는 데 대한 감사,

둘째, 큰아들과 며느리 손녀가 건강하면서 직장에 잘 다니고 화목한 가정을 영위하는 데 대한 감사,

셋째, 작은 아들이 건강하고 직장에서 인정받으면서 생활하는 데 대한 감사,

넷째, 이미 돌아가셨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행복한 만남에 대한 감사,

마지막으로, 우리 집안 모두가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여유와 행복에 대한 감사.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다보니 왠지 화끈한 열기가 온 몸을 휘감는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지난 주일 목사님의 설교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서, 소중한 것들을 찾아내려 하게 되므로 상대의 부족함이나 단점을, 추궁하거나 비판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마음이 편해진다.” 고 하셨다. 감사한 말씀이다.

  해맞이를 마치고 하산하여 예약된 장소에 도착했다. 대부분 낯이 익은 사람들이다. 모두들 어려운 일 하나를 해결한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고 있다. 오늘 따라 떡국이 정말 맛있다. 봉사하는 사람들의 정성일까? 아니면 감사하는 기도 때문에 내 마음이 이미 궁정적 사고로 변한 것은 아닐까? 여하튼 새로운 기운이 솟는 듯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쉬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손녀로부터 온 영상통화였다.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손녀(6개월 후 만 4살)의 앙증맞은 새해인사로 기해년의 첫 선물이다. 손녀의 갑작스런 선물에 그냥 “그래, 그래”를 연발하면서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연이어 오지 못한 아들 며느리의 영상세배를 받으며 기해의 밝은 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축복, 축복인 것이다. 감사함에서 오는 축복!

#광장21 #기해(己亥)아침의귀한축복 #장상현 #수필가,인문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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