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한테 아버님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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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한테 아버님이라니
  • 박선희 기자
  • 승인 2019.11.21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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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선/수필가
남상선/수필가

호칭은 대상의 본질이나 그 특성에 어울리는 호칭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몸에 맞지 않는 의복이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 생기는 부자연스러움과도 같다. 단순한 부자연스러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에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와 망연자실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흥동 성당 김신중 신부님이 어느 세미나에 참석하여 발표하는 기회가 있었다. 신부님은 전문가들 앞이라 부담감을 안고 발표를 했는데 발표가 끝나자 교수되는 한분이 앞으로 나오며 질문하려고 던진 그 한 마디가

'김신중 선생님’

하는 것이었다.

신부님 입장에서는 그때까지‘신부님’이라는 호칭만 들어오다가 자신을 지칭하는‘선생님’이라는 익숙지 않은 호칭에 아무 생각도 안 났다고 했다. 담담하고 얼떨떨한 상황에서 어떤 대꾸도 못하고 말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한 번은 그 신부님이 어느 식사 초대 자리에 갔더니 안내양이 하는 말이

“ 아버님, 212호 난실로 가시면 됩니다. ”

하는 것이었다.

신부님을 아버님이라 부르는 바람에 신부님은 무척이나 당황하여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10월 어느 날 추석 명절은 다가오고 해서 신부님이 수녀님들과 같이 드시려고 배 한 상자를 사러 농수산 시장에 갔는데

“사장님 , 마침 오늘 아침에 좋은 배 들어온 것이 있는데 잘 해드릴 테니 다른 데로 가지 마시고 이리 오세요. ”하는 것이었다. 신부님한테 사장님이라니 역시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더운 여름날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신부님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신도 한 분이 찾아왔다. 그는 오자마자 무릎 관절에는 수영이 좋다는 얘기를 신부님께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신부님은 관절염 치료 목적으로 수영을 배우러 수영장에 갔는데 수영코치가 신부님한테 하는 말이“ 회원님, 그 자세로 하지 말고 이런 자세로 한  번 해 보세요 . ”

하는 것이었다 .

신부님은 유별난 복도 있어 1년 사이에 선생님, 아버님, 사장님, 회원님 이란 네 개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 신부님이 어느 가을날 전철 안에서 겪었던 이야기이다. 성당교우가 초상이 나서 영결미사를 보기 위해 전철을 탔는데 옆에 앉았던 청년 한 사람이 자리에서 잽싸게 일어서더니

“ 아저씨, 여기 앉으세요.” 하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자의적인 호칭이 이해는 가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신부의 입장에서 똑같은 사람이 공간만 달리했을 뿐인데‘신부님’ 호칭을 해야 할 자리에 ‘선생님,  아버님,  사장님, 회원님, 아저씨’ 란  호칭을 해서 신부님을 당황하게 또 얼떨떨하게 만들었다. 존재의 본질에 맞지 않는 호칭을 해서 신부님은 한 동안 정체성의 혼돈에서 어안이 벙벙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일은 신부라는 특정 대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활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다반사(茶飯事)의 이야기라 하겠다.

호칭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침 김춘수님의 < 꽃 >이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후략~

 

상대방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인식을 해 주었을 때 내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 대상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는 > 주의와 조심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상을 존재감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존재의 본질에 알맞은 호칭은 그 대상의 존재감을 살리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단순하게 웃어넘길 일화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언어생활에서 본질에 알맞은 호칭으로 대상을 진정한 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대상의 빛깔과 향기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을 해서 꽃을 꽃나무 열매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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