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천의 발원지 만인산(萬仞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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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천의 발원지 만인산(萬仞山)
  • 박선희 기자
  • 승인 2020.03.02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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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재균/수필가
염재균/수필가

2020년 2월 22일.(토요일)

금요일 저녁 무렵부터 밤새도록 봄비가 내려 다음날 산행하기로 한 일정이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모두의 소원이 통했는지 다행스럽게도 새벽이 되면서 내리던 비는 그치고 약간의 추위만 아침나절에만 잠시 머물다가 따스한 햇살에 밀려 물러가기 시작한다. 절기상으로 봄이 온다는 입춘과 우수도 지난 토요일에 60세가 조금 넘은 비교적 젊은 사람들 4명이 대전의 근교의 산 중에서 오늘은 대전천의 발원지가 있는 만인산을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하기로 했다.

오전 9시경 태평동 삼부프라자 앞에서 만나 우리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 때문에 악수 대신 눈인사만 나눈 후 마스크를 쓴 채 목적지인 만인산을 향해 출발했다. 전날에 비가 와서 그런지 미세먼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고 청량한 파란하늘이 우리일행을 반겨 주고 있었다.

자가용으로 약 30분 정도 소요되는 만인산휴양림의 주차장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해 놓은 차량들이 얼마 보이질 않는다. 만인산을 갔다왔다하면 꼭 들러야 하는 코스로 각광받는 봉이 호떡집의 개점시간이 10시 30분이라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해 산행을 마치고 나서 들리기로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포장된 길을 따라 올라가니 대전천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대전광역시공원관리사업소에 의하면 발원지인 봉수레미골의 유래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 놓았다.

‘봉수레미골'은 대전광역시 동구 하소동 만인산 동쪽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2개 법정동과 19개의 소하천이 흐르는 하천으로 대전시민의 애환과 향수를 담고 있는 대전천의 발원지이다. 구전에 의하면 달맞이나 큰 제향이 있을 때 정상으로 봉화를 올리던 골짜기라 하여 봉수내미골이라고 불리고 이후에 봉수레미골로 불리어지고 있다고 한다. 만인산 정상에는 지금도 절구통 양식의 봉화자리인 봉수대 터가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한성에서 오는 봉화신호를 받아 전라도 방향으로 소식을 전하고, 동쪽 식장산 방향 2km 지점의 정기봉 정상의 봉수대에서는 경상도 방향으로 소식을 전하였다고 한다.’

표지판의 설명을 보고나서 발원지의 유로(流路)의 조성방식을 살펴보니 시멘트 블럭이나 시멘트 옹벽이 아닌 자연석을 주변의 자연과 어울리게 쌓음으로서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살렸다는데 환경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봉수레미골을 지나면서 나무데크로 이어진 경사가 급한 계단을 30분 정도 올라가니 만인루(萬仞樓)가 눈에 뛴다. 만인산을 둘러싼 멀리 있는 산들이 저마다 위용을 뽐내며 우리일행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산위라 그런지 차가운 봄바람이 잠깐의 간식을 먹고 있는 우리들에게 훼방이라도 놓으려는지 한바탕 불어오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봉화대 터가 있는 곳으로 가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산등성이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니 봉우리 위에 흔적만 남은 봉화대 터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외롭게 우리 일행을 반겨주고 있다. 잠시나마 봉화대가 운영될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우리 조상들이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없었더라도 비상연락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신 수고로움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 일행이 산행을 하고 있는 이곳 만인산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해보면,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어 대전 시민들의 휴식과  여가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높이 537m의 산으로 충청남도 금산군과 대전광역시 일대에 걸쳐있으며 정상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胎室)이 있는 산이라고 해서 태실산(胎室山), 또는 태봉산으로도 부른다고 한다. 원래 태조의 태실은 함경도에 있었으나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만인산의 터가 명당이라 이곳으로 옮겨왔는데, 태조 이성계의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되어 만인산 동쪽 자락에 위치해 있다. 산봉우리의 모양이 만발한 연꽃 모양을 닮았으며, 숲과 계곡이 아름다운 곳으로 등산로와 숲속 자연탐방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만인산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 능선에 만인루(萬仞樓)가 있으며 주변 일대가 조망된다. 남쪽 기슭에는 중부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동쪽에는 금산군 추부면이 위치한다. 대전천이 만인산 계곡에서 발원한다.’

봉수대 터를 지나 낙엽이 쌓인 길을 한참 걷다보니 멀리 중부대학교가 보인다.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청정지역 산속에 있는 학교라 요즘 빠르게 번지고 있는 코로나19 발생지역과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 같다. 

산행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보다 보람 있고 건강하게 보내기 위한 서로간의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덧 20m 정도의 출렁다리가 눈에 뛴다. 다리 밑에는 안전펜스가 처져 있어 만약에 떨어지더라도 다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모두들 호기심에 출렁다리를 건너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앞서간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필자는 마지막에 서서 발을 구르니 출렁다리가 아래위로 요동친다. 잠깐의 스릴을 맛보니 예전에 군복무시절 유격을 받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출렁다리가 끝난 지점에 다다르니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실을 안치한 곳이 나타난다.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31호인 이곳 태실은 일제 강점기인 1928년에 조선 왕실의 다른 태실과 마찬가지로 서삼릉으로 옮겨졌는데, 이 과정에서 남은 석비와 석물이 훼손된 채 방치되다가 1993년에 이곳 만인산인 이곳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태실은 돌로 난간을 만든 팔각형의 형태이며, 그 안은 팔각 원당 형 구조이다. 태실 앞에는 거북 모양의 귀부 위에 태실비가 있으며, 태실비의 정면에는 ‘태조대왕태실’ 이라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중건한 시기(1689년)가 새겨져 있다.

거북 모양의 돌이 변색되어 안타까움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산행은 막바지에 접어들고 휴게소 주차장까지는 200m 거리를 계단과 융단처럼 깔아놓은 멍석처럼 보이는 곳을 단숨에 내려와 산행하기 전 맛보지 못한 봉이 호떡을 예전의 성수기 때는 줄을 서서 한찬을 기다려야 했는데,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어 줄을 그다지 서지 않고 한 개씩 맛을 본 후에, 인근에 있는 추부지역의 별미인 추어탕으로 점심식사를 하려고 외진 곳에 있는 쌍둥이 식당을 찾아갔다. 코로나19의 영향인지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떨어져 앉아있고 모두들 조심스런 표정이었다.

 
주 메뉴인 추어탕이 나오기 전 인삼튀김 한 접시를 시켜 대전의 막걸리인 곡주와 함께하니 온 몸에서 느껴지는 감흥의 맛이 식욕을 자극한다.

대전천의 발원지인 만인산의 봉수레미골의 유래와 정상에 있는 만인루와 봉수대 터의 역사적 의미와 조선 태조 대왕의 태실비 등 역사적인 문화탐방을 겸한 산행을 하고나니 의미가 더욱더 커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전은 계룡산지, 식장산지, 만인산지, 구봉산지 등으로 둘러 쌓여있는 전형적인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는 살기 좋은 도시이다. 가까운 산을 찾아 힐링도 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여가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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