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秋夕) 대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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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秋夕) 대목장
  • 장상현 수필가
  • 승인 2021.10.0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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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수필가
장상현 수필가

"쌉니다, 싸요! 말만 잘 하면 공짜로도 드립니다.

가진 목청을 다해 힘껏 소리 질러대는 사람은 어물(魚物)을 판매대에 널어놓고 연신 목에 핏대를 올리며 고함을 질러댄다.

또 다른 옆에서는 한 장에 만 원, 한 장에 만 원! 질세라 옷을 장판에 늘어놓고 목청을 높인다.

주위는 생선 비린내, 막 잡은 고깃덩어리, 신선한 채소, 때가 꼬질꼬질한 한약 재료와 나이 드신 노파와 꼬마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악세사리 판매 아줌마!.....

이곳은 중부권 최고의 5일장이라고 불리는 유성(儒城)의 5일장 풍경의 일부이다.

유성장은 4일과 9일에 선다. 오늘이 9월 19일이니까 영락없는 유성 추석 대목장이다.

나는 아침부터 아내와 추석대목장 구경을 하자고 약속했다. 마침 명절을 함께 보내고 싶어 좀 일찍 내려온 막내아들이 있어 시골장터 구경도 시킬 겸 같이 서두른다. 여태껏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시장(市場)이 서지 못했는데 그 단계가 4단계에서 3단계로 하향 조정되는 관계로 5일장이 서게 되었다.

우리 일행(부부와 막내아들)은 괜히 딱히 살 것도 없지만 구경도 할 겸 해서 일찍 나가서 순대국밥도 먹고, 옛 장터를 생각해 가면서 마음의 즐거움을 갖고자 한 약속이었다. 승용차로 가면 복잡하여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할 것도 없는 준비를 막 끝내고 버스 시간을 조회해 보니 곧 정류장에 도착시간이 되었다. 부랴부랴 나아가 버스를 타고 시장 입구에 내려 들어서니 밤, 대추, 사과, 배 등 햇과일이 많고 각종 고기류(소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닭고기 등)와 된장, 마늘, 도라지, 더덕, 가지 등 반찬 종류와 어물(魚物)이 넘쳐난다. 이어서 악세사리, 약재, 버섯(능이버섯은 1Kg당 17만 원씩이고, 송이버섯은 1Kg당 23만 원의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제수(祭需)용품 가게에도 사람들의 많은 왕래가 있고, 특히 뻥 튀기가 있는 장소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며 즐거운 대화가 이어지며 웃음소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서로의 어깨가 부딪치기가 일쑤였고, 어림잡아 10m쯤 통과하는데 10분 이상은 걸리는 듯하다. 이것저것 신기한 풍경도 많고, 한편으로는 먹고살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처량한 모습까지 느낄 수 있다. 그래도 오늘은 대목장이라 손님이 많아 다른 날보다 많이 팔려 삶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대부분 시장은 썰렁하여 한 끼 밥을 조달하기에 급급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추석을 넉넉하고 풍요로운 명절(名節)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한참을 다니며 구경하다보니 어느 듯 배가 출출하다. 평소에 잘 찾는 시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순대국밥 집에 가서 막걸리 한 통을 곁들여 한 끼를 때울까 했는데 아내가 하는 말 “시장 복판에 칼국수 잘하는 집이 있으니 아침을 먹은 지도 얼마 안 되었고 하니 그곳으로 가자”고 한다. 나는 “그래요? 맛있는 곳인가 봐요!” 하면서 여자분들의 맛 집이라고 하니 맛있겠다. 생각하고 그 집을 찾아 아내를 따라갔다. 그곳에 도착하니 칼국수를 먹기 위해 벌써 줄을 서 있다. 기대가 많이 되기도 한다.

우리 식구들이 입장할 순서가 되어서 들어가니 가게는 약 5~6평 정도의 좁은 홀이 있고, 식탁은 5개이다. 그리고 그 홀 구석에서 60대 초반인 듯한 남자 1명과 여자 한 분이 열심히 반죽하고, 주문된 국수를 끓여 식탁으로 날라주는 등, 남자분은 땀이 멎을 새가 없다. 물론 손님도 많지만 2명이서 반죽, 조리, 배달, 설거지까지 다 하니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기다림에 뱃속이 시장하면 맛이 더 있는 법...

우리 차례가 되니 3명이라고 별채로 가라고 한다. 별채라야 4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4개가 고작인 임시 막사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조금을 기다리니 투박한 냉면 그릇에 가득 담은 칼국수가 앞으로 놓여진다. 화끈한 기운이 얼굴 쪽으로 쏠리는 듯싶었는데 갑자기 쑥갓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평범한 칼국수 위에 싱싱한 쑥갓을 고명으로 놓아서 그런지 강한 쑥갓향이 코를 자극한다.

반찬은 달랑 김치 한 접시에 양념 통 하나다. 양념 그릇에는 별다른 양념 없이 간장에 약간 매운 고추를 썰어 삭힌 것뿐이다. 그 고추양념 간장을 작은 숟가락으로 좀 많이 붓고 나서 맛을 보니 어릴 때 집에서 먹던 양념간장 그 맛 그대로이다.

나는 갑자기 “어! 얼큰한 것이 옛날 맛일세!”라고 감탄하였다.

그렇다. 약 5, 60여 년 전에 먹던 그 맛이다. 정신없이 먹었다. 금방 현장에서 한 반죽이라 면발은 쫄깃하고, 담백하다. 국물은 더 할 나위없다. 마치 어릴 적 고향을 먹는 듯하다. 좀 짠듯하지만 한 모금 남기지 않고 국물까지 다 먹었다. 아내도 물론이고 막내아들까지 맛있다고 잘 먹었다. 국수 값은 4,000원이다. 값도 싸지만 맛 또한 훌륭해서 후회 없는 점심식사였다.

배도 부르고 더없이 즐거워서 본격적인 시장 답사를 시작했다. 시장은 뭐니 뭐니 해도 물건 구경과 먹거리가 중심이 아니던가. 돌아다니며 보니 추석을 대비함인지 떡집(온갖 종류의 떡이 색깔조차 아름답다.) 제수용품 집에 손님이 번잡하다. 아무래도 조상님께 드리는 추석차례(秋夕茶禮)때문인 듯하다.

먹거리 골목에서 가장 눈길이 멈추어지는 곳은 녹두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과 싱싱한 푸성귀를 넣고 고추장과 함께 막 비벼먹는 장터비빔밥이 시선을 끈다. 벌써 취해서 휘청거리는 어르신도 계시다. 모두들 한 자루씩 사서 들고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서둘러 시장들을 빠져나간다. 대목장이란 원래 괜히 흥미롭고 왠지 기분이 넉넉해지는 공간이다. 모두들 만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표정, 문득 하늘을 보니 청정의 파란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오늘 아마 하늘에서 추석의 넉넉함을 사전에 맛 보이려고 하늘까지 맑고 상큼한 기운을 내려주시는가 보다. 우리는 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맛보려고 갈아서 파는 녹두와 껍질을 깐 도라지, 숙주나물, 손 두부 등을 사서 다시 시내버스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누가 먼저라기보다 각자는 이미 집에 가서 녹두부침개 만들고, 그것을 안주로 막걸리 맛을 보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집 출입문 번호를 누른다.

누군가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라 했던가! 이는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으로. 맑고 풍요로운 가을의 날씨를 비유하는 말이다. 필자는 이를 ‘천고심비(天高心肥)’라고 하고 싶다. 하늘의 청명함과 비례하여 마음이 넉넉해지는 계절이므로 마음마저 넉넉하여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옛 글에 지족가락 무탐즉우(知足可樂 無貪則憂)라는 글이 있다.  곧 "만족함을 알면 즐거울 것이요, 탐하기만 하면 근심이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날 추석의 대목장 덕분에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녹두빈대떡에 두부, 김치에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식사는 풍요로운 가을을 몽땅 내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모두가 팔월 추석 대목장의 넉넉함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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