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기 노부부의,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 /남상선

2020-03-19     박선희 기자
남상선

요즘은 창궐하는 코로나로 방구석에 갇혀 사는 날이 많았다. 육신이 멀쩡해가지고 답답한 공간을 지키는 신세가 됐으니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의 심경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소 체험해보는 시간 같았다. 계제에 인내력을 키워보려는 욕심으로 집필하는 일에 신경을 썼지만 연일 반복되는 단순 노동은 무료함을 달래기가 어려웠다.

 

창밖을 내다보니 화창한 날씨였다. 야외로 나가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다. 마침 이런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용복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날씨가 좋으니 도솔산의 싸이클 경기장 주변 운동장이라도 돌자는 거였다. 잘 됐다 싶어 방한용 모자를 챙겨 쓰고 곧장 나갔다. 세상 사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싸이클 경기장 가는 비탈 도로로 쉬엄쉬엄 걸어 올라갔다. 한 동안 무기력한 생활에 아침 운동까지 쉬어서 그런지 다른 때보다 유난히 숨이 차게 어려웠다. 30°경사의 200ⅿ도 안 되는 비탈길을 두 번씩이나 쉬면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운동장엔 우리와 꼭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들 건강하게 살려고 운동장을 열심히들 돌고 있었다.

 

그 때 마침 광장 한 가운데 보행기를 끌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머리가 허옇고 얼굴에 잔주름이 있는 걸로 보아 연세가 있어 보였다. 보행기엔 걷기 힘든 할아버지가 선하게 보이는 희멀건한 눈동자를 힘없이 굴리며 매달려 있었다. 안타깝기는 했지만 보기 좋은 모습임에는 틀림없었다. 사랑하는 남편 할아버지를 위하는 노파아내의 극진한 정성과 사랑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정작 아름다운 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만져 볼 수 있는 것도 아닌, 마음에만 느낄 수 있는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진정한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된 사랑은 꽃보다 아름답다 해도 시비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친화력이 많고 넉살 좋은 용복형님이 보행기를 끌고 있는 할머니한테 말을 걸었다.

     

“ 할아버지께서 어디 아프신 환자인가 봐요! ”

“ 예, 경증치매 환자인데 요양원에 있다가 나왔어요. 처음엔 나진요양병원에 있었는데 사정으로 양녕노인병원에 가 있다가 나왔어요. 상태가 좋아지는 기미가 없으니 그대로 뒀다간 요양병원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돌아가실 것 같아 퇴원했지요. 퇴원하고 이렇게 매일 보행기로 운동하면서 좋은 공기 마시니, 조금은 좋아지는 거 같아 그냥 기뻐요.”

     

자초지종 얘기를 들어보니 할아버지는 전직 연구원으로 근무하시다 27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는 거였다. 그 동안 숱한 치료도 받고, 요양도 했으나 결과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억력이 오락가락한다는 거였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게 어떤 때는 정상일 때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는 거였다. 할아버지 연세는 82세, 할머니는 76세였으니 보행기에 매달리다시피한 할아버지 형상이며, 보행기를 힘겹게 끌고 있는 할머니 모습은 바라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보행기의 왼 쪽 손잡이엔 간식거리를 담은 가방인지 거기엔 요구르트 몇 병과, 비스켇 2봉다리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었다.

     

감동겨운 상황을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서 내 한 마디 했다.

     

“힘내세요. 지금처럼 두 분의 의지와 사랑으로 열심히 운동하시면 기적이 일어나실 겁니다. 제가 성당에 다니는데 매일 새벽마다 기도해 드릴 테니 할아버지 존함 좀 말씀해 주세요.”했다. < 할아버지 존함은 이동찬> 이라 했다. 지금까지 매일 새벽 4시에 울리는 알람시계 벨 소리에 일어나 45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드리고 있다. 오늘 이동찬 할아버지 한 분이 더 보태졌으니 46명이 된 셈이었다. 매달리는 심정으로 청원기도를 올려 45명을 비롯한 이동찬 할아버지 모두의 정상 건강을 찾아 드려야겠다.

 

곁에 서 있던 용복형님이 그대로 있기가 좀 안 됐던지 한 마디 거들었다.

 

“제 곁에 있는 이 선생님도 10년 전에 교통사고로 사모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 잃지 않고 이렇게 꿋꿋한 의지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힘내세요.”

 

노부부는 열심히 듣고 계셨다. 순간 보행기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할아버지가 제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끔적끔적하며 눈물을 흘리는 거였다. 내 아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용복형님의 얘기가 할아버지 심경을 자극한 거 같았다. 내 사정을 딱히 여겨 눈물을 흘리는, 보행기에 매달린 할아버지를 보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격증 있는 이 울보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할아버지 눈물에 대한 답례인지 보행기 노부부의 딱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에 드리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울고,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우는 형상이 연출됐으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었다. 보행기에 의지한 할아버지가 흘린 눈물이나,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 흘린 눈물은 아마도 동병상련의 연민의 정에서 나오는 액체이었을 것이다.

 

‘보행기 노부부의,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 ’

 

나이 들면 누구 할 것 없이 가야 하는 노인 요양원, 어쩔 수 없어 가는 곳이긴 하지만, 한 번 들어가면 건강해져 나오는 일 거의 없으니, 누가 즐겨 가고 싶은 곳이겠는가?

십중팔구는 죽어서야 바깥세상 보러 나오는 곳이니, 이 어찌 현대판 고려장이 아니겠는가?

 

할머니는 이런 걸 아시기에 요양 중에 있던 할아버지를 퇴원시켰던 것이다. 할머니는 어떤 희생이 따르는 수발이라도 들어, 할아버지를 살리려고, 사랑의 힘으로, 정성을 다하는 힘으로, 보행기를 끌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마나님 할머니 사랑이 고마워서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보행기 노부부의,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 ’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행기에 매달린 할아버지가 어른거린다. 보행기를 끄는 할머니가 클로즈업되어 날 울린다.

이 어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