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어다

2021-07-29     김규나 시인
김규나

 

한 발 디딜 때마다 힘을 빼야 허우적이지 않고 걸을 수 있다 물살에 엎드려 숨소리를 죽이고 네 발로 기어야 들키지 않고 다가갈 수 있다 길고 커다란 입 벌리고 물어뜯을 기회만 노리다가 어떤 날은 양지바른 곳에서 얌전히 햇살을 맞기도 한다 내 안에서 사라진 수많은 생명들, 커다란 나무가 되기 위해 숲을 좇아가다 늪에 빠지기도 하고 무서운 독거미를 만나서 숨을 거둔 적도 있는, 더 이상 야자나무에 올라타 열매를 따는 일을 할 수 없는, 햇살이 나뭇잎을 반짝 닦아 놓으면 바람이 후 하고 흔들어 놓는, 생각의 정글을 헤매며 밀림에서 태어나 밀림에서 죽는 악어가 아니라 밀림에서 살고 싶은 나는 악어다 생기발랄한 바람을 맞으며 탁한 강물을 가르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