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가을역

2021-09-06     김화자 시인
김화자

가을역에 내리는 것은

삶의 고뇌를

이미 품고 있는 것이다

 

봄꽃 같던 첫사랑도

초록이 풋풋하던 여름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풍경을 거두어가는 것이다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가는 고속 열차 같고

간이역마다 우여곡절을 감내한

눈부신 사연들이 있는 것이다

 

식은 맨드라미 꽃잎에도

녹슨 솟대에도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에도

나부끼는 시인의 옷자락에도

헤아릴 수 없는 가을 역에 닿는 것이다

 

머지않아 가장 먼 여행을 떠날 때

쓸쓸하지 않게 서정(西汀)은

풍류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시인의 가을 역에는

시든 꽃이 스무 살처럼

반짝이며 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