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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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이야기
  • 광장21
  • 승인 2018.06.0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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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안/수필가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월급을 받더니 딸은 옷도 화장품도 액세서리도 아닌 앵무새를 분양받았다.

어미 새는 알을 낳으면 깔아주려고 총천연색의 털을 목 아래에서 아랫배까지 스스로 뽑아 흉한 알몸이 된다. 털을 뽑아 더 따뜻하게 품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머리카락만 한 올 뽑아도 아픈데 엄마 마음은 인간이나 새나. 그렇게 품어서 태어난 새끼를 어미와 함께 두면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번식조가 되고, 어미와 분리하여 사람이 온도 맞춘 이유식을 2개월가량 해주면 스스럼없이 사람과 어울리는 붙임성 좋은 앵무새가 된다. 딸이 데려온 앵무새 코코는 2개월로 막 이유식을 끝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처음 도착한 날은 완전히 당황한 듯 밥도 물도 먹지 않고 컴퓨터 책상 아래 구석자리를 찾아 들어가 가슴을 벽에 꼭 대고 꼼짝하지 않았다.

분양한 이는 그래도 적극적으로 만져서 친해지라 하고, 앵무새를 키운 경험자들은 가만히 두라 한다. 새가슴이라더니 무섭고 낯설어 죽겠나보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내게도 느껴졌다.

낯선데 만지면 싫을 것 같아 가만히 두었다. 앵무새를 처음 보아 당황하기도 했고, 선명한 초록색 깃털로 뒤덮인 새를 덥석 만지게 되기까지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새장에 넣어 서재에서 하룻밤을 재웠다.

 

다음날 아침 갑자기 날아올라 딸의 어깨에 앉더니 내려오지 않는다. 하루 만에 완벽하게 적응해버렸다. 전용 호화주택을 장만했는데 새장에 넣으면 짹짹거리며 꺼내 달라고 난리난다.

이런 새는 처음 본다. 십자매를 십여 년 키웠는데 어디까지나 너는 너 나는 나여서 새의 세계란 그런 것인가 했다.

토끼를 사서 동네 아이들이 쓰다듬게 했더니 그만 다음날 하늘나라 간 적이 있다. 이 새는 사람과의 스킨십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런 참이라 데리고 자다가 잠결에 깔아서 하늘로 보낸 이들도 많다고 한다.

 

친화력. 그것은 결국 상대적인 것이다. 일방적인 것은 없다.

 

 

가족 모두 인간횃대가 됐다. 그야말로 껌딱지다. 정이 들어 외출했다 집에 들어가려면 현관으로 들이닥치며 "코코야~" 하고 부르게 되었다.

새장을 감옥같이 싫어하고 늘 붙어 있으려 한다. 눈이 마주치면 서슴없이 날아와서 뽈뽈 기어오른다. 어깨에서 털을 고르고 품에 코를 박고 잠꼬대하며 잔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 두려움이 전혀 없다.

 

요 녀석은 중형으로, 친화력 좋고 눈치가 100단이라 한다.

언어능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가르치면 “사랑해” 정도는 한다. 대형 앵무새는 가르치지 않아도 말도 노래도 잘하고, 사람의 말을 단지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웬만한 대화가 가능하다.

회사에 다녀오겠다 하면 새가“안녕히 다녀오세요.”한다. 키우려면 폭 빠진다. 외로운 이는 앵무새를 키우면 좋을 것 같다.

어깨에서 잠들면 볼에다 뽀뽀를 해도 조그만 눈을 감고 내쳐 잔다. 여기저기 볼 일을 보면 어쩌나 했는데 주기적으로 내려주면 바닥에 딱 손톱만큼 실례를 한다. 물휴지로 얼른 닦아내면 된다. 걸레 청소를 자주 하게 된다. 바라볼 때마다 귀여운 느낌이 드는 자체로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다.

 

같은 종류 중에서도 으뜸으로 자태가 아름답다.

가슴의 털이 예쁜 붉은 색으로, 마치 화가가 붓으로 일부러 진하기를 조절하여 색칠한 듯하다. 윤기 흐르는 등의 깃털은 온통 짙은 초록색으로 보이지만 날개를 펼치면 가장자리로 갈수록 아름다운 청록이다. 동그란 눈동자의 위아래로 잘 정리한 듯 눈썹이 예쁘게 나 있다. 어떻게 '알'에서 이렇게 예쁜 새가 나왔을까?

옐로우사이드코뉴어. 멸종 위기 2급이다. 발목에 발찌를 하고 있다. 양도,양수 서류를 지니고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100만 원의 벌금형에 새도 빼앗긴다.

낯가림도 없이 아무에게나 덥석덥석 잘 간다. 그래서 멸종위기 종일까. 예쁜데다 똘망똘망해서 다 자란 후 자태도 기대된다.

 

 

특히 내 껌딱지다. 모이를 먹고 나면 두리번대며 나를 찾아 날아온다.

딸과 함께 새를 앞에 두고 서로 “이리와, 코코야” 하고 부른다. 새는 한 뼘 전까지 다가와 번갈아 빤히 쳐다보며 한참 망설이다 결국 내게로 온다.

딸이 질투한다.

 

“나쁜 자식. 궂은일은 내가 다 하는데.”

모이를 종류별로 챙기거나 새장을 청소하는 일은 딸이 도맡아 한다.

어쩔 것이여. 사랑이란 잘해준다고 반드시 그만큼 그를 사랑하리란 법이 없다는 게 얄궂다.

“삼각관계는 원래 그런 겨.”

나는 약 올린다.

 

딸은 코코를 데리고 앵무새 카페에서 밴드 회원들을 만나고 왔다. 애견 카페처럼 여러 종류의 앵무새가 있는 찻집에서 만나고 온 것이다.

17세의 한 남학생은 대형 앵무새를 가둬 두기만 하고 모이 주기도 소홀히 해서 엊그제 하늘로 보냈다. 그는 단톡방에서 쫓겨나다시피 나가야 했다 한다. 굶겨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회원들의 공분을 샀다.

17세면 고1에다 남학생이라니 사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찰 때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종일 학교에 있다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갈 것이다.

생명을 키우다 보면 생명의 소중함도 깨닫기 마련. 혹은 생명을 사랑하는 이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인지 모른다.

 

모이를 먹고 나면 두리번대며 뒤뚱뒤뚱 서재로 안방 화장대로 심지어는 양치질하는 화장실 문 앞까지 찾아온다. 어깨에 새를 얹고 다니는 여신의 이야긴 그리스 신화에서 종종 읽었는데 요즘 초록색 앵무새를 어깨에 얹고 다닌다. 동네에서 유명해질 것 같다.

새 탈을 쓴 강아지 같아서 강아지 뺨치는 스킨십이 가능하다. 징그러워서 못 만질 것 같았는데, 쓰다듬고 덥석 손으로 잡고 부리에 입도 맞춘다.

코코는 다른 새들과도 낯선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어울린다. 새에게도 성격과 개성이 있다. 코코는 아주 매력적인 성격이다. 활달하다. 혼내면 꼬리를 펼쳐 공격 본능을 드러내고 더 거칠어진다. 예뻐해 주어야 한다. 발라드보다 댄스곡을 좋아해서, 아이돌의 노래를 틀어두면 저도 우렁차게 짹짹대며 노래를 한다. 특히 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를 좋아한다.

 

 

앵무새의 세계를 새로 알았다.

새를 사랑하고 데려다 적응시켜 말까지 가르친 최초의 사람은 누구일까.

평소 애견인들이 강아지의 엄마 아빠 언니가 되어서, 족보가 왜 그런 것인가 했다. 딸이 결단코 코코 엄마가 되겠다고 해서 우리는 할 수 없이 코코의 할아버지 할머니로 역할 배정 끝났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새가 들어왔는데, 딸을 보기 힘들어졌다. 마치 자신 대신 새를 데려다 놓기라도 한 듯.

엄마 곰은 침 발라 키운 사랑스러운 새끼를 먼 딸기 숲에 데려다 놓고 사라져버린다. 이어령 씨의 책에서 읽은 엄마 곰의 차가운 사랑이야기. 새끼는 이제 홀로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서점에서 서서 읽는데 코가 찡해졌다. 나는 차가운 사랑이 어렵게 느껴졌다. 새끼는 독립할 수도 있지만,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알게 되었다.

엄마 곰이 버리고 떠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새끼가 차갑게 떠나간다는 것을.

 

딸을 키우는 것은 새를 키우는 것과 같다. 아니다. 새끼를 키우는 것은 새를 키우는 것과 같다. 때가 되면 날아간다. 알고 있었지만 정을 떼며 날아가 버리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남편이 있어도 세상이 허전했다. 우리는 관계의 뒷방으로 밀려난다. 인간관계란 얼마나 허무한가. 사람은 누구에게 일관되게 마음을 붙이고 사랑하며 살아야 하나. 몸으로 낳고 순간마다 사랑하며 기르고 오랜 기간 함께 체온을 나누며 살았는데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듯 훌쩍 날아가 버린다.

 

 

나훈아의 노랫말처럼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맞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 때문에 울먹일세라’(홍시 일부) 일생 마음 쓰는 부모는 딱한 해바라기다.

내리사랑만 있고 치사랑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부모 자식 사이여도 일방적인 사랑은 건강하지 못하다. 따뜻한 사랑은 주고받는 거래라기보다‘서로 하는 것’이다.

예쁜 새는 딸 대신 찻집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기도 하고, 침대에서 뺨을 맞대고 있기도 한다. 마치 분리불안을 앓는 아기처럼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서재 문 앞에 찾아와 “안녕!”,“이쁜이!”하며 부리로 콕콕 노크를 한다. 책상 위 책들을 쪼아 누더기로 만든다. 말썽꾸러기. 사람들이 왜 반려동물을 키우는지 알 것 같다.

 

 

옹알이를 하더니 '코코야' 하고 불쑥 말을 하기 시작했다.

“코코야” 할 땐 내 어투로, 낮고 허스키하다. “안녕!” 할 땐 딸처럼 쇳소리가 섞인 소프라노다. 날 볼 땐 "코코야" 하고, 딸이 벨을 누르면 "안녕!" 하며 반가워한다.

최근엔 "이쁜이"를 새로 배웠다. 외출했다 돌아오거나 아침에 새장 문을 열어주면 "이쁜이!" 하고 기뻐서 소리친다. 실제 발음은 '이쁘니'에 가깝다.

 

딸이 묻는다.

“내 이름이 뭐야?”

“이쁜이!”

“내 이름이 뭐야?”

“안녕!”

코코는 자기가 아는 말을 랜덤으로 둘러대며 대답한다.

나더러는 “이쁜이” 하는 적이 별로 없다. 아기 새가 아줌마와 아가씨를 구별하는 모양이다.

 

홀로 밤 산책을 할 땐 코코를 데리고 나간다.

 

어깨에 앉히고 나가면 밤의 뜰이 나온다. 키 큰 소나무 사이로 달이 떠 있다. 어두우면 무서운지 옷깃 속으로 파고든다. 새는 사람보다 체온이 높다. 품에서 잠든 한 줌 새의 체온이 따뜻하다. 딸이 남겨 두고 간 체온인가. 멀리 높이 날아가는 새를 그려본다.

#광장21 #김지안 #수필가 #코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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