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능한 공직후배의 명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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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능한 공직후배의 명퇴
  • 홍승표
  • 승인 2023.04.1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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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승표/ 전 경기도 관광공사 사장
 홍승표/ 전 경기도 관광공사 사장

4월 첫날, 이른 시간에 파주시청에서 함께 일했던 이주현 국장으로부터 카 톡 메시지가 날아들었습니다.

‘공직을 마무리하면서 부시장님을 생각하면 이 글이 생각납니다. 인생이란 한판의 포커 게임과 같은데 좋은 패만 골라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일단 패를 받았으면 그 패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게임을 끌어가는 게 인생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러한 삶의 태도에서 각자의 답을 현명하게 찾아 가는 것일 뿐입니다. 각별하신 사랑 많이 고마웠습니다.’

만우절이라 거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삶의 변곡점이 되는 거취를 표명한 것이라서 곧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이 국장! 아직 명예퇴직 할 때가 안됐잖아?” “네! 내년 6월말인데 3월 31일 날 사표를 던졌습니다.”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핵심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으니 누군가 책임져야 되는데 후배들이 다치는 것보다 제가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전화를 끊고 파주에서 영향력을 가진 몇몇 사람들에게 무슨 상황인지를 체크해보았지요. 핵심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이 그가 이른바 총대를 메고 그만 둔 이유였습니다.

새해 들어 김경일 파주 시장은 “70년간 존치해온 성매매 집결지의 완전한 폐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소명’이다”라면서, “성매매 집결지정비 사업은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밝혔지요.

파주시는 성매매 집결지의 완전한 폐쇄를 목표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파주경찰서·파주소방서와 업무협약을 맺는 등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왔습니다.

시장은 본회의에서 성매매 집결지정비사업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며 성매매 집결지 정비사업 예산이 반영될 수 있도록 호소했지요. 그러나 의원들과의 소통은 공직자들의 몫이었고 죽어라 뛰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시의회에서 ▲순찰초소 운영 ▲시민대상 성매매예방교육 등 성매매집결지 정비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지요. 파주지역사회가 들끓었습니다. 공무원은 물론 시장의 노력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지요. 그런데 아무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이 국장이 사표를 던진 것입니다.

그는 능력이 출중하고 대외협상능력도 뛰어나 파주에서 소문난 베스트 공무원이었지요. 그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표를 던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표를 즉각 수리해버린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제가 부시장으로 일할 때, 그는 기업지원과장이었습니다. 그때, 축구장 6개 크기의 LG필립스 공장증설허가를 단 13일 만에 처리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지요.

LG노조에서 정기적으로 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하고 故 구본무회장이 금촌 시장에 미소금융을 설치해 상인들을 도운 이유였습니다. 그가 그만둔 건 파주의 큰 손실이지요. 능력 있는 공무원은 보호해야 합니다.

저는 파주에서 한나라당 류화선, 민주당 이인재 시장을 각각1년씩 모시고 일했지요. 두 분 모두 소통의 달인이라 의회와 협업이 잘됐습니다. 예산조기집행 대통령기관표창을 받은 것도 의회와 잘 소통한 결실이었지요.

직원들을 아껴줘서 중도에 그만둔 공직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해 들어 두 사람의 국장이 그만뒀고 또 다른 국장도 명퇴를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지요. 평생을 일한 공직자가 할 수 없이 그만두는 건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의회, 시민과 소통하고 좋은 공직자를 보호하는 것은 단체장이 책무지요.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 가야 멀리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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