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찾아 떠난 꽃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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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아 떠난 꽃구경
  • 광장21 기자
  • 승인 2021.03.1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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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매화마을과 구례 산수유마을 보고)
염재균/수필가
염재균/수필가

 

 

봄은 이미 왔다고 하지만 봄의 절기 중에서 경칩이 지났는데도 아침저녁으로 부는 봄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얼마 전에 등산이나 하자며 오랜만에 친분이 있는 총무에게 전화가 와서 경남 거창의 출렁다리를 비롯한 견암폭포와 의상봉 일대를 트레킹하자고 해 코로나19로 무슨 산행이냐고 망설였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하면 괜찮다는 말에 승낙을 하고 말았다.

 미세먼지인지 짙은 안개인지 구분을 할 순 없지만 3월 9일(화요일) 아침이 밝아오고 산행 갈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과 간식 등을 챙겨 오전 7시 30분경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설레임과 두려움 속에 봄 산행을 위해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구)시민회관 뒤편으로 가기 위해 버드내 사거리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119번 시내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 서대전 시민공원 근처에서 내린 다음 점심으로 간단하게 먹을 김밥을 사기 위해 주변 음식점들을 두리번거린 끝에 문을 연 김밥을 전문으로 하는 분식집으로 들어가 참치 꼬마김밥을 주문하였는데, 주인은 한국인이 아닌 베트남에서 시집온 우리말이 약간 서툰 젊은 사람으로 친절함이 몸에 밴 것 같아 보였다.

 꼬마김밥을 배낭에 넣은 후 관광버스가 오기로 한 지점으로 가서 10분 정도 기다리고 있으니 드디어 차가 왔다. 차에 오르는 순간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코로나19 이전에 함께 등산을 다니던 사람들이었다. 차는 36인승으로 함께할 우리 일행은 20여 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혼자씩 앉아서 마스크를 쓰고 될 수 있으면 대화를 하지 않기로 약속하면서 두려움 속에 차는 8시 13분에 구)시민회관을 출발하였다.

 출발하자마자 총무가 다가오더니 우리 일행이 가기로 했던 당초의 목적지가 출입 통제되어 부득이하게 산행코스가 아닌 남쪽인 광양의 매화마을과 지리산 구례 산수유꽃 공원으로 변경되었다고 귀띔을 해준다. 순간 필자는 당혹감에 빠져들었다. ‘사전에 카톡에 공지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푸념을 해본다.

 

 차가 대전ic를 지나자마자 인솔자로부터 오늘의 목적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지켜야 할 안전수칙도 곁들인다. 차안이 예전 같으면 떠들썩했을 텐데 조용하기만 하다.

대전순환고속도로를 따라 호남고속도로로 이어지는 창밖의 풍경은 봄이라도 메마르고 건조하여 을씨년스럽고 안개가 자욱이 깔려있어 더욱더 처량해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마지막 휴게 시간을 갖기 위해 ‘벌곡 휴게소’에 들렸다. 15분 휴식 동안 볼 일을 마치고 휴게소 주변을 둘러보니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없어 조용하기만 하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즐겼던 정자에는 통제를 위한 띠줄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커피 한 잔도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진다.

관광버스는 다시 힘을 내 광양의 매화마을 향해 출발했다. 창밖으로는 겨울이 힘들었는지 대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 잎들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많이 띈다. 원인이 무엇일까라며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철 푸름을 자랑하는 댓잎들이 폭설과 한파에다 대나무를 베어내지 않아 밀식현상이 심해지면서 말라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또한, 푸르러야 할 산과 밭을 뒤덮고 있는 태양광발전 시설로 인해 삭막하기만 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장마로 인한 폭우로 산사태 발생 시 많은 피해를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만 하였다.

오전 10시 38분경에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ic를 빠져 나오니 도로변에 활짝 핀 산수유와 매화꽃이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봄이 완연한 남녘답게 푸르게 자라나고 있는 들녘의 보리밭과 화사하게 피어있는 복사꽃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벅찬 감동을 일으킨다.

 차는 계속해서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니 오전 11경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화합의 장터인 화개장터가 보인다. 가수 조영남이 불러 유명해진 화개장터가 작년에 강의 범람으로 시장이 침수되어 많은 피해를 본 곳이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화개장터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남도대교를 건너니 광양방면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주변의 매화꽃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섬진강 주변에 펼쳐진 꽃 잔치를 구경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관동마을에서부터 매화로 유명한 매화마을까지 3.5km 구간을 20여 명의 일행과 거리를 두면서 걷기 시작했다. 드넓게 펼쳐진 벌판의 매화꽃과 배꽃이 눈이 내린 듯 하얗게 물들어 걷는 동안 힘들지도 않았다. 섬진강을 흐르는 맑은 물과 모래밭이 그곳으로 풍덩 들어가고픈 욕망을 부려본다.

 

 섬진강 주변의 둘레 길을 걸으면서 왜 섬진강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섬진강의 유래를 알기 위해 ‘섬진강 유래비’에서 살펴보면 섬진강은 고려 말엽 우왕 때(1385년경)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여 광양만과 섬진강에도 왜구가 자주 출몰하였는데, 한번은 왜구들이 하동 쪽에서 강을 건너려 하였을 때 진상면 섬거마을에 살던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몰려들어 진을 치고 울부짖는 통에 왜구들이 놀라 도망치면서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왜구의 약탈을 면하게 되어 강의 이름을 ‘두꺼비나루’를 뜻하는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얼마를 가다보니 지난 여름에 강의 범람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힌 수마의 흔적이 이곳 자곳 눈에 띄었다. 아직도 복구하지 못해 출입통제라는 팻말만이 아픈 속살을 드려내놓고 있어 빠른 복구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화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휴일이 아닌 평일인데도, 관광농원인 매화꽃의 장관을 보기 위해 자가용들이 주차장에 가득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장기간 집에만 있기에는 답답하여 맑은 공기와 꽃을 봄으로써 해소하려는 것이리라.

 오후 3시 10분까지 식사도 하고 꽃구경하라는 인솔자의 말을 들으며 삼삼오오 짝을 찌어 매화마을로 접어들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어느덧 12시가 넘어 점심 식사를 하려고 바람을 피해 커다란 바위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각자가 가지고 온 보따리를 풀어 민생고를 해결하였다.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진 후 천천히 매화로 가득한 커다란 골짜기에 조성된 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따라 사진도 찍어가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도록 매화꽃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보니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꽃을 보면서 술 한 잔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참아야만 했다. 얼마 전에 치아가 많이 아파 계속해서 치과에 다녀야만 하기 때문이다.

 매화꽃이 장관을 이루는 매실농원은 개인이 소유한 곳으로 꽃대궐을 이룬 성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수많은 꽃들을 구경하면서 보니 이곳은 쓸모없는 바위들이 많고 가팔라 일반 농사짓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 매화나무를 심어 매실로 팔고 가공하여 여러 가지 제품들을 만들어 일거양득의 소득을 얻기 위해 메마른 땅을 가꾸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관광지가 된 것 같았다. 쓸모없는 땅을 옥토로 만들어 낸 분의 개척정신을 이어받고 싶어진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자세히 보니 매실나무가 심어 놓은 지 오래되어 많은 가지가 잘려나가 겨우 목숨만을 유지한 채 꽃들을 피우며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꽃들은 만발하였는데, 벌들이 아직은 봄이 왔어도 아침과 저녁으로 기온 차가 크기 때문에 활동을 하지 못해 눈에 띄지 않았다.  매화꽃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곳곳에 매화에 관한 유명한 옛 시인들의 글귀를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조선 중기 때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 체찰사를 지낸 시인이며 정치가인 ‘관동별곡’을 지은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시를 소개해 본다.

雲水縣亂 竹叢中見 古梅一樹(운수현란 죽총중견 고매일수)

운수현 대나무 숲의 고매 한 그루 있음을 보며

梅花一樹半無枝(매화일수반무지) 매화 한그루 반 남은 한 가지

標格依然雪月時(표격의연설월시) 설월 속 의연한 높은 그 품격

休道託根非處所( 휴도탁근비처소) 못쓸 곳 뿌리했다 말하지 마라

老兄心事此君知(노형심사차군지) 매화의 그 심사가 대(竹)가 아나니.

매화마을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섬진강을 바라보며 매화마을의 꽃구경을 마치고 구례마을로 산수유 꽃을 구경하기 위해 오후 3시 10분경 차에 올랐다. 조금 가다보니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이 강 건너편에 보인다. 드넓은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변 모래사장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푸근하고 느긋해진다. 일정상 가보지는 못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차는 오전에 왔던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 구례군 산동면에 있는 산수유축제 주 행사장인 수석공원을 찾아갔다. 오후 4시라 그런지 코로나19로 인하여 지역축제로 유명한 축제가 취소되어 행사장 주변은 쓸쓸하고 차가운 바람만 불어대고 있었다. 그래도 행사장 주변을 둘러싼 공원과 산수유군락지를 비롯한 마을은 온통 샛노란 산수유 꽃들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 얼마 멀지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는 더케이 교직원 공제회가 운영하는 지리산 가족호텔이 있다. 오래전에 공무원으로 현직에 있을 때 행정실장 연수로 2박 3일간 보다 나은 직무수행을 위해 토론과 의견을 교환하던 장소인데, 숙소가 편하고 깔끔한 곳으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라 눈에 선하다.

 보다 많은 산수유 꽃을 보기 위해 공원 중앙에 있는 나무로 만든 40계단으로 만들어진 전망대에 올라 눈[目]에 꽃과 향기를 담았다. 멀리 희미하게 높은 산들이 보이는데 노고단으로 가기위해 차를 타고 내렸던 등산을 시작하는 곳인 성삼재가 눈에 들어온다. 주어진 시간이 50분이고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여 공원을 힘차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즐겼다.

봄을 찾아 남쪽으로 떠나온 꽃구경이 코로나19로 의기소침해 있는 필자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봄의 생기를 눈과 마음으로 느껴보는 소중한 체험의 시간이 된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

 오후 4시 50분경에 꽃구경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 일행을 태운 관광버스는 서산 너머로 서서히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대전으로 향했다. 오후 6시경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여산휴게소에 들러 작별의 인사를 눈인사 및 주먹으로 대신했다.

 

 짙어만 가는 저녁노을이 오늘따라 더욱더 아름다워 보인다. 봄의 전령사인 매화와 산수유 꽃을 마음껏 보고나니 기쁨의 선물인 것 같다. 아는 것보다는 실천하는 것이 백 번 낫다는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를 되새기며 삶의 가치를 더욱 더 높일 수 있는 여행을 아내와 함께 자주 다닐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꽃이 거기에 있어 불원천리 마다말고 너를 찾아 그곳에 간다. 라는 평범한 진리를 교훈 삼아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부지런히 여행을 다녀야겠다. 내 마음속 가슴 깊이 노랫소리가 들린다.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늙어지면 못 노나니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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