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사랑은 핏줄을 지키는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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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사랑은 핏줄을 지키는 열쇠
  • 광장21 기자
  • 승인 2021.03.2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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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종순/수필가
주종순/수필가

 

어릴 때는 누구나 순진하고 청순하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어른들이 겉똑똑이라는 말씀을 잘하시더니 딱 맞춤이다. 어쩜 그 나이에 당하는 것도 다 그렇진 않을 테니 어리석음 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겉만 똑똑하던 나는 대전과 부산, 두 곳에 출판사를 두고 강의와 더불어 교재를 파는 출판사에 취직한지 3개월 될 때, 사장님이 전화를 하셨는데 “부산에 와서 놀다가 가라고, 그리고 입금 할 돈도 있으니 대전으로 가져 가라”고 해서 내려갔었다.

 어린 마음에 부산엔 바다가 있는 항구 도시에, 워낙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본적 없는 도시니 부푼 가슴을 안고 부산행 고속버스를 타고 회사까지 무사히 찾아갔다. 사장님과 강사님들이 어린 직원이었던 나를 무척 반겨 주시고, 마지막 열차로 가라고 기차표도 예약했다고 하시며, 부산에 오면 회를 먹어봐야 된다고, 여러 가지 회 종류와 해산물 종류를 시켜 주셨다.

 만나서 회사 운영 전반에 걸친 얘기도 나누고 부산 이익금으로 대전 재정에 쓰라고 800만원을 주셨다. 사장님은 큰돈이라 걱정을 하시며 조심을 당부하셨다. 그 당시 돈의 액수는 내 월급의 열 배였고 내 수중에도 돈이 좀 있었으니 많은 돈 조심 하느라고 마지막 열차에 올라 밤중이라 졸려도 눈도 못 붙이고 대전에 도착 했는데, 새벽 12시가 훨씬 넘어 대전역에 도착했다. 집으로 가려면 야간통행증이 있어야 할 때다.

열차에서 내리니 열차손님의 손목에 청색잉크로 찍어준 통행증표를 받고 대전역 앞 광장을 걸어가며 누가 옆에 다가올까 걱정 하는데, 뒤에서 여자 목소리로 아가씨라고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니 내 또래 정도의 여자였다. 그 여자는 “늦어서 청주를 갈 수도 없고 돈이 부족해 잘 곳도 없다고 나랑 둘이 여인숙 방 한 개 빌려서 같이 쓰자고 그리고 아침에 각자 집으로 가자”고 그랬다.

그런데 나는 여인숙은 불륜들이 가는 곳으로만 알고 살았기 때문에 너무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니라고 집까지 걸어가면 된다고” 돌아섰다. 그런데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그 여자에게 온정을 베풀기로 결정해서 “우리 집으로 가서 자고 아침 일찍 가라”고 했더니 좋아라고 따라왔다. 대중교통도 다 끊기고, 택시도 없고 걸어가는 것도 힘들고 하던 참에 큰 트럭이 옆을 스치는 찰라 손을 들어 세웠다. 여자 둘이라 걱정도 없이 용기 내어. 트럭 덕분에 집에 금방 도착하여 밤공부를 하는 여동생에게 서둘러 적당히 사연을 얘기하고,

 나는 먼저 누우며, 데리고 온 여자에게 가운데를 비워주고, 나란히 누웠는데 뻔뻔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주인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겉옷을 홀딱 벗고 잔다는 거다. 완전 남남간인데 그것도 서너 시간이면 일어날 텐데 너무 거친 여자라는 생각이 그때서야 느껴졌다. 그래도 몇 시간 후에 내 가방속 돈을 훔칠 거라는 생각도 못하고 나는 금방 곯아 떨어졌다.

나의 여동생이 시험공부 하느라 책상에 계속 앉아 있었는데 그 여자가 자는척하며 여동생 눈치를 살피다가 몇 번 눈이 마주쳤다고 도둑질 당한 후에 얘기해 주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동생도 벌써 학교에 갔고, 옆도 비었고, 순간 아뿔사! 부산 다녀온 돈 가방이 다 뒤집힌 채 동전까지 다 긁어 훔쳐간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죽을 것 같은 절망감과 후회,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알렸다. 엄마의 첫마디 하신 말씀이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걱정마라 큰 액땜 했다. 그 도둑을 집으로 데려왔기 때문에 네 몸이 성한 거다. 아니면 밤사이에 인신매매나 강도강간 같은 일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냐? 아주 못된 인간을 만났다면 목숨도 위태했을 거라“고 나를 그렇게도 이해시키고 안정시키며 돈 걱정에 힘들어 할까봐 날 달래주시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씀으로라도 위로를 해주셨으나 난 오기가 생겨 매일 근무시간 외에는 도둑을 내 손으로 잡으려고 잊을 수 있는 시기까지 역전을 배회 했었다. 그 일 또한 바보 같은 순진성의 한 가지이었던 것을. 바보멍청이 그 생각만 해도 너무 분해서....

그 당시에는 워낙 치안 유지가 힘들 정도로 뉴스만 켜면 인신매매가 극성이고, 사회가 불안해서 야간에도 통행금지가 지속됐던 것 같다. 나는 너무 순진이 아니라 좀 필요 없는 의협심이 문제였다는 생각도 한다.

 “못 나도 잘 나도 내 식구라더니......“

그렇게 큰돈을 잃어도 자식의 안위만 생각하시는 부모님과 가족들, 세상 어느 누가 나를 이 자리까지 일으켜 세웠을까? 부모님이고, 내 가족이었던 것이다.

내 이 순    (耳順)

가족의 사랑은 핏줄을 지키는 열쇠이며 힘든 세상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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