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옥상에 오르면
맞은편 교회 붉은 십자가가 불빛을 밝히고 있다
훈훈한 바람에 봉숭아 꽃잎이 흔들거리고
어두운 하늘에는 작은 별들이 군데군데 떠 있다
불빛이 사라진 들쑥날쑥한 건물 사이
거리에는 적막함이 흐른다
늦은 시간 옥상 평상은 쉼터이다
십자가 붉은 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울적한 마음이 금세 사라지곤 한다
십자가는 옆으로 돌아서지도 않고
돌아앉지도 않는다
글로 쓰지 못할 사연을
술술 풀어 놓아도 가슴을 열고
안아주는 것만 같다
눈물이 떨어지면 십자가의 불빛은 더
선명하게 빛난다
붉은 십자가는
밤새 몸을 달구며 그 누군가의 꿈길이 되고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세상의 어둠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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