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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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와 정의
  • 광장21
  • 승인 2018.12.08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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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문/수필가

 

  티브이에서 두툼한 몸집에 얼굴선이 뚜렷한 사나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의~리!”하며 외친다. 우리 연예계‘의리’의 아이콘 김보성이라는 연기자다.

  일상에서‘의리’란 사나이다움의 상징어라 할 수 있는데 가끔은 조금 단순한 캐릭터로 연출된다. 한 때 유행처럼 만들어지던 조폭영화들은 대부분 호쾌한 폭력을 주로 하지만 감독들은 주인공의‘ 사나이다움’에 얼마간 돈키호테 같은 성향을 입히고 씬 여기저기에 코믹도 버무려 넣는다. 예의 ‘의~리’광고의 감독은 그 전형에 딱 맞아 떨어지는 모델로 김보성을 택한 듯하다.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려온 우리나라의 사상적 기조는 선비정신이고 그 핵심엔 세계 어디에도 흔치 않은 ‘의리’라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 ‘의리’는 ‘사나이’와 궁합이 맞다. ‘사나이’라는 말은 요즘엔 널리 쓰이지 않지만 6·70년대엔 노란 샤쓰의 사나이, 진짜사나이, 팔도사나이, 바보 같은 사나이처럼 가요나 영화 제목 따위에서 흔히 쓰였다. 그 시절 “의리에 죽고 사는 바다의 사나이다. 풍랑이 사나우면…”어쩌고 하는 노래도 유행했었다. 역시 사나이 중의 사나이 박노식 주연의 ‘마도로스 박’이라는 영화의 주제가인데 지금도 노래방 어느 방에선가 들리곤 한다. 모두가 특유의 근육질적이고 선 굵은 수컷 기질이 선호되던 시대적 패러다임의 일면인 것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도 의리에 죽고 사는 사나이들이 있다. 그 가운데 김보성 못지않게 떠오르는 인물로 5공실세의 한 사람으로 전두환 정권시절 안기부장과 대통령 경호실장을 지낸‘20세기의 충신’ 장세동이 있다. 5공 청문회장에서“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로 인해 세간의 의리 지상주의자들 사이에서 장세동 신드롬이 일었고 급기야는 노무현 대통령을 뽑았던 16대 대선에 주군인 전두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감행했다. 결국은 명예롭지 못한 ‘의리의 사나이’라는 훈장마저 날린 채 막판에 사퇴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의리’의 다른 쪽은 ‘반 의리’ 즉 ‘배신’이다. 최고의 배신은 국가나 민족에 대한 배신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에겐 단연 일제강점기의 친일행위다. 이완용, 박제순 등 을사5적(근래에는 이하영, 민영기를 포함해 을사7적이라고도 한다.)과, 일제에 빌붙어 항일투사들 잡아다가 고문을 일삼은 노덕술(盧德述, 마쓰우라 히로, 1899~1968)이나 일제 말기 만주에서 항일투사들 색출에 혈안이 되어 날뛰던 김창룡(1920~1956) 따위가 대표적이다.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을 위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주살한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단종 복위를 위한 수양대군 제거계획이 누설되자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거사 직전 동료들을 밀고해 엄청난 참화를 부른 정창손, 김질 등의 사육신에 대한 고자질은 역대 급 배신이라 할 수 있다. 이성계의 조선개국에 죽음으로 저항한 정몽주나 두문동 72현 등의 청사에 길이 남을 충의와 크게 대비된다.

  현대 우리 정치계의 배신문제도 만만찮다. 그 중에서도 두 전직대통령 건이 압권이다. 2016년 가을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구속되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각종 비리로 영어의 신세가 된지 꽤 오래지만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거기서 눈길을 끈 것도‘의리’문제였다. 두 전직의 범법행위를 요약하면 박근혜는 비선정치 등으로 드러난 무능과 직무유기에 집중되고, 이명박은 임기 초부터 불거 진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포迎浦라인) 내각’이라는 인사문제 등 거의가 군사정권시절에나 있을 법한 정실과 뇌물관련 범죄들이다.

 박근혜의 경우 충복들이던 안종범 정조수석, 유진룡 문체부장관, 김종 차관 등이 수사과정에서 수동적이긴 하지만 최순실게이트를 줄줄이 실토했다. 그에 비해 이명박은 이재오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하들이 애초에 그를 등졌다. 대표적 사례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15년간이나 집사 격으로 그를 모셨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경우다. 주군을 위한 금품수수로 구속되었는데 구속기간 중 면회 한 번 하지 않았고, 구속 중 생활고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부인의 장례식에 문상은 고사하고 화환조차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정두언 전 의원 등 배신감으로 그를 등진 이들이 허다하다. 반면 이명박 자신은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으로 승승장구하면서 본령인 노동계를 배반했고, 1992년 대선에서는 민자당에 입당해 김영삼을 지원함으로써 자신을 자식처럼 키워 준 왕 회장(당시 국민당 창당, 대선후보) 정주영을 배신했다. 그야말로‘반 의리’의 끝판 왕이라 할 만하다.

  요즘 우리 정계에선 의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 각 정당마다 법에도 없는, 정의롭지도 않은 ‘의리’ 문제로 밤낮 ⁕들살(소란)이다. 오늘 뉴스에서는 여야가 ‘의리’로 뭉쳐 셀프 세비 인상을 하고, 낮술 한 잔 걸친 중년남자는 국회의 그런 꼴에 항변하듯 알몸달리기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

 최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후보자로 지명된 홍남기 전 국무조정실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원으로부터 의리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근혜 정권시절 청와대 기획비서관으로서 문제의 청와대 캐비닛 문건 중 수석비서관회의 결과 문건을 자신이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 않았느냐며 다그쳤다. 여의도 쪽에서 많이도 듣던 소리다. 같이 근무한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 않느냐며 의리 없는 행동이라고도 했다. 이야말로 ‘정의’빠진‘의리’의 전형이다. 질의에 대해 후보자는“거짓말 할 수 없어서”라고 명료하게 답변했다.

 폭력배나 사기꾼 집단에서 유독‘의리’를 들먹인다. 범죄의 동업자로서 서로를 지켜주는 걸 ‘의리’라며 사나이다움을 과시하는 그야말로 코미디다. ‘의리’도 그것이 ‘정의’인가로부터 판단되어야 한다. 요즘 뉴스에서 ‘내부고발’이 검찰수사를 도와주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혹자들은 ‘배신’이라며 힐난한다. ‘우리가 남이가?’식 의리일 뿐이다. 고자질 자체가 선(善)이라 할 수야 없지만 정의를 위한 내부고발은 장려되어야 하고 그 용기야 말로 ‘사나이다움’이라 할 것이다. ‘의리’는 우리 사회의 ‘정의’를 지탱해가는 덕목이다. 지금이야말로 ‘의리’보다는 ‘정의’가 바로 서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함께 할 때다.

주: 들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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