찡한 눈물이 있는 곳. 오정문학회 시화전 전시실.
제24회 오정시화전이 2019.3.28.-4.2까지 대전시청 2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안영민 회장을 비롯해 스물 세 명 회원들의 수작(秀作)들 160여 편과 전병렬, 변혜섭, 장정혜, 권예자, 윤옥희, 배정태, 김은순, 안영민 등 원로작가 부스도 특별히 만들어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와 보시라, 왜 눈물을 흘려야만 되는지.
≪당신
장정혜
차창 밖엔 무거운 비 내리고
먼 산 앞산에 안개 흐르듯
마음 하나로 그대 찾아갑니다
가을도 영글기 전
태풍에 짓밟힌 낙엽
맺힌 한 나누러 함께 갑니다
아무 것 가진 것 없어
나 빈 손으로 그대 곁에 서지만
황혼길 노을 빛 되어주는 당신
나 아직 이 자리에 있습니다≫
남편 저 세상으로 보내고 20여년, 서글픔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날마다 약 두 알로 우울한 심정을 달래며 살아야하는 가녀린 여인. 차창밖에 내리는 비가 왜 무겁지 않겠는가? 그래서 가을도 되기 전 짓밟힌 낙엽처럼 수없이 쌓여온 한을 풀러 당신을 찾아간다 하였다. 혼자 살아왔으니 가진 게 무어 있겠는가? 그래서 빈손으로 찾아가 하소연 하는 것이다. ‘나 아직 이 자리에 있다고. 당신 곁에 있다고’
필자가 이 하소연을 보는 순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미어지고 콧날이 시큰거렸기 때문이다. 옆에 안내하는 안 회장께 전화를 걸어 바꿔 달라고 했다.
수화기를 받아드는 순간 상대편의 음성도 들을 새 없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혼자 어떻게 살아왔냐고. 왜 이런 시를 전시해서 남을 울게 하느냐고”
계속해서 누구냐고 묻는 음성이 들려 왔다. 그러나 말을 이을 수가 없어 수화기를 안 회장께 넘겼다. 안회장이 어떻게 소개했는지는 알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겨우 발걸음을 돌려 몇 걸음 가니
백혜옥 시인의 ‘봄봄’ 이 시선을 멈추게 했다.
≪봄봄
백혜옥
직박구리가 등 뒤에서 소란하다
홍매화 피는 날
꽃 보러 가자고 했다
청보리 싹이 나오면 피리도 불자고,
뾰족한 뒷목의 깃털을 세우고
가슴의 흰색 점을 보이며
날아간 애인
봄을 물고 돌아왔다
매화향 부리에 담고
청보리 피리를 들고≫
백 혜옥 시인은 ‘날아간 애인 봄을 물고 돌아왔다’고 하였다. 시어의 조탁(彫琢)이며 묘사해내는 솜씨가 뛰어났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깔끔하고 지성미 넘치는 시인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발걸음을 또 멈추게 하는 시가 또 있는 게 아닌가?
≪또 다른 삼경三經
김명이
시경 서경 역경이
사내의 중한 독서라 하고
니체는 피로 쓴 문학이라 하였으니
초경 월경 폐경을 겪어낸 이가 있어
그녀는 달의 몸을 받아
음력을 짓고 건사하는 동안
마침내 섭렵하게 된 궁의 문리를 트니
여인이야말로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리라≫
창의성이 뛰어난 시인. 사내들이 즐겨 읽는 시경, 서경, 역경의 삼경(三經)을 여성들의 생리현상인 초경 월경 폐경에 비유했으니 창의력이 얼마나 뛰어난 표현인가?
어서 만나고 싶었다. 이들 세 분 시인들과 오정 문학회 또 다른 시인들을. 그래서 다음 날은 일찍 이곳을 또 찾았다. 다행히 ‘봄봄’과 ‘또 다른 삼경’이 홀을 지키고 있었다. ‘당신’을 불러 달라고 했더니 20여분 만에 달려왔다. 아니 달려온 게 아니라 지팡이 짚고 어렵사리 나왔다. 몸이 불편 하다는 얘기다. 날마다 우울증 약으로 견딘다 했다. 나이 80. 나와 동갑이다.
이들 세 시인들의 시 세편을 카톡 문자로 받아 내가 주필로 있는 세종일보사로 사진과 함께 넘겼다. 10분도 안 되어 언론에 게재 되었다. 모두 곁에 두고 사귀고 싶은 시인들이다. 얼굴마다에는 세월의 흔적들이 나름마다 주름져 있었다.
아아. 오정 문학회. 이곳의 문인들과 함께 어울려 나도 시를 쓰고 싶다. 이곳에는 산 시인을 비롯해 무휼, 전병렬, 안영민, 김경희 시인과 많은 원로시인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사랑 리헌석 대표께서는 ‘충청문화 예술4월호’ 30권을 후원했고, 박진용 대전문학관장님께서는 개막식 날 오셔서 축사를 해주셨다. 두 분께도 감사드린다.
4월 2일에 폐막한다 하였으니 폐막까지는 아직 3일 남았다. 나는 오늘도 일찍 가서 이들과 만나 그들의 시 세계를 맛 볼 것이다.
#광장21 #김용복 #오정문학회시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