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唐太宗)의 세 가지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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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唐太宗)의 세 가지 거울
  •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2.07.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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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교수 장상현
장상현 인문학 교수

제1편: 당 태종(唐太宗)의 세 가지 거울

 

중국 역사상 정치(政治), 경제(經濟), 문화(文化)의 꽃을 피웠다고 평가받는 당 태종(唐 太宗) 이세민(李世民)!

그는 모든 것을 이루고(단 하나 이루지 못한 꿈 : 고구려 정벌) 죽음에 임박해 후손과 신하들에게 삼감(三鑑 /세 개의 거울)의 내용을 설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곧 자기를 대 당 황제(大唐皇帝)로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 세 가지를 꼽은 것이다

‘이봉이록 민고민지(爾俸爾錄 民膏民脂)’는 ‘관리들의 봉록은 다 백성들의 기름이다.’라는 뜻이다. 관리들이나 관원들의 봉급은 전부 백성들이 바친 비단이나 곡식으로 준다. 모두 피땀 어린 노력과 정성으로 거두어들인 것들이다. 그러니 함부로 힘없는 백성들을 학대하여 더 이상 부당하게 뜯어가지 말라는 경고 지침이기도 하다.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 이연(李淵/唐高祖)을 도와 수(隋)나라를 멸망시키고 당(唐)나라를 세운 일등공신이다. 당(唐)고조(高祖) 이연(李淵)에게는 22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정실 두 씨(竇氏)사이에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건성(李建成)과 둘째 세민, 셋째 현패(李玄覇), 넷째 원길(李元吉)이다.

황태자 이건성은 이세민을 두려워하였다. 황태자 이건성 밑에는 위징(魏徵)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위징은 황태자 이건성과 넷째인 이원길을 도와 이세민을 죽이려 하였다. 이것을 눈치챈 이세민은 ‘현무문(玄武門)의 난’을 일으켜 형 이건성과 아우 이원길을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고조 이연은 이세민을 황태자로 세우고 조칙을 내려 크고 작은 군사와 일반 정치를 모두 태자에게 맡겼다.

당 태종이 된 이세민은 이건성을 도운 위징(魏徵)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중용(重用)하였다. 그의 인격에 끌렸고 옳은 일에는 굽힐 줄 모르고 직간(直諫)하는데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위징은 그냥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담력과 계략으로 황제의 생각을 잘 읽었을 뿐이다. 더러는 정면으로 직접 간언(諫言)하여 당 태종의 마음을 상하게도 하였다. 당 태종의 심기가 불편할 때도 위징의 자세는 당당함 그대로였고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위징의 태도에 당 태종은 감정을 억누르며 노여움을 가라앉히곤 했다.

어느 날 당 태종이 아름다운 새매를 구하여 손바닥에 놓고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위징이 오는 것을 보자 얼른 새매를 소매 속에 감추었다. 위징은 당 태종에게 업무를 보고하면서 짐짓 시간을 지체하였다. 결국 새매는 당 태종의 소매 속에서 죽고 말았다. 당 태종에게는 위징의 직간하는 태도가 모두 경계토록 하는 말이었고 하나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솔직한 말이었다. 그러므로 당 태종은 어쩌면 그러한 태도의 위징을 밉지만 믿는다는 생각 이상으로 아꼈던 듯하다.

위징이 병으로 자리에 누웠을 때 당 태종은 위징의 집으로 약(藥)을 보내고 왕실 호위 무관을 보내어 기숙하면서 보고토록 하였다. 또, 당 태종 손수 황태자와 함께 병문안을 가기도 하였다. 그를 매우 아꼈기 때문이다.

당 태종은 오직 백성을 위한 일에 최우선을 두었다.

당 태종 시대를 역사상에서는 ‘정관의 치(貞觀之治)’라고 한다.


당 태종(唐太宗)이 역사상 영명(英明)한 군주로 기록된 데에는 위징(魏徵),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와 같은 훌륭한 신하들이 많이 있었고, 태종 또한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왜 어떤 군주는 지혜롭게 되고, 어떤 군주는 혼암(昏暗)하게 되는가?” 대답하기를 “일을 처리하면서 각 방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들으면 현명한 임금이 되고, 한쪽 말만 지나치게 들으면 혼암한 군주가 됩니다.(兼聽則明 偏聽則暗)”

위징이 죽은 후 당 태종은 조정에서 신하들에게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그동안 정사를 하면서 나를 비추어보는 세 가지 거울이 있었으니 나의 의관(衣冠)을 단정하게 하는 거울이 그 하나요(鑑乎鏡),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와 교훈을 비추어보는 역사서(歷史書)가 그 둘이요(鑑乎前), 마지막으로 내가 처리하는 정사의 잘잘못을 비추어주는 간의대부(諫議大夫) 위징이라는 거울이 있었다(鑑乎人).

그런데 이제 그 중 하나가 없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당부했다.

“천하의 일에는 선(善)과 악(惡)이 있는데 선인(善人)을 등용하면 국가가 안정되고 악인(惡人)을 등용하면 국가가 위태롭게 된다. 이후에 인재를 등용하면서 감정이나 애증에 의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내 잘못을 보거든 위징처럼 기탄없이 간쟁(諫爭)을 해야 한다.”

간언(諫言)은 군주를 위한 것도 있지만 백성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오르지 자신의 외모를 비추는 거울 즉 동감(銅鑒)만을 알지만, 현명한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보는 인감(人鑒)을 중요시하면서 시대를 성찰하고 역사의 흐름을 비추는 사감(史鑒)을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지도자분들 역사를 통해 얻는 지혜를 갖고, 국가를 위한 진정한 인재를 등용하여 면면히 이어온 대한민국의 동력을 키워가는데 자신을 바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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