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벚꽃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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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벚꽃 구경
  • 덕천  염재균 수필가
  • 승인 2024.04.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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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 염재균 수필가

오늘은 의미 있는 날이다. 미래세대에게 희망의 심어줄 수 있는 식목일이며 중국 고대사에 나오는 할고봉군(割股奉君)의 충신인 ‘개자추’(介子推)를 기리기 위해 찬 음식을 먹도록 했다고 하는 유래에서 시작된 한식(寒食)날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봄비가 대지를 휘감으며 온 누리를 초록의 물결로 수를 놓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 몸을 움츠리게 하지만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느꼈는지 서서히 빗장이 풀리고 봄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는 훈풍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개나리와 백목련과 벚꽃이 만개하여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한다. 일찍 피어난 벚꽃은 벌써 아름다운 꽃잎을 떨구며 바람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듯하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이에 적응하려면 사람은 건강해야 한다. 일주일 전에 잘못하여 허리에 무리가 갔는지 통증이 심하여 이틀에 한 번씩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고 뜸을 뜨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허리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차도가 있어 식목일이면서 국회의원과 중구청장 재선거의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첫날이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자 오전6시 20분경 가까운 투표소에 다녀왔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니 하얀 목련화와 벚꽃이 당신의 한 표가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파트 주변에 활짝 핀 벚꽃을 보노라니 어디론가 떠나 꽃구경을 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오른다. 아내에게 함께 꽃구경을 가자고 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얼굴은 소녀마냥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 아내는 간단하게 주먹밥을 만들고 따뜻한 차를 만들어 보온병에 넣은 다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고 한다.  

우리 부부가 행사한 소중한 한 표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판암동 방면으로 차를 몰아갔다. 교통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구간인 테미고개로 접어드니 수도산에는 벚꽃이 만개하면서 꽃 대궐을 이루어 운전자들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복잡한 시내를 벗어나자 이어지는 벚꽃들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대청호 500리길 벚꽃길 [사진=염재균]

벚꽃은 분홍색 또는 하얀색으로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하며,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꽃말은 내면의 아름다움, 순결이라고 하는데, 아름다운 정신, 절세미인, 삶의 덧없음, 교양, 부(富), 번영을 뜻하기도 한다고 한다. 벚꽃에서는 향기가 거의 나지 않아 코를 대고 맡아야만 겨우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하니 아름다움과는 비교된다고 할 수 있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두는 꽃구경을 하니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꽃이 피기 전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도로변이었는데,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천 고개를 지나면서 벚나무의 꽃들이 무리를 지어 오고가는 사람들을 감흥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지닌 것 같다. 세천 삼거리에서 보은군의 회남 방면으로 향하는 길은 평일인데도, 꽃구경하려는 차량들로 인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자 벚꽃 터널이 우리 부부를 반기고 있다. 2차선의 좁은 길 양쪽에 심어진 벚나무에서 꽃들이 만발하여 꽃 대궐을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을 눈으로 보는 느낌이다.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대청호 벚꽃 축제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작년에는 비가 많이 오고 개화시기가 빨라 축제기간에는 꽃이 하나도 없는 쓸쓸한 축제로 전락한 쓰라림이 있다고 한다. 운전을 하면서 보니 축제장 주변에는 평일인데도, 사진을 찍으며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아쉬운 점은 차를 잠시 세우고 아름다운 모습을 찍고 싶어도 주차할 공간이 없어 할 수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청호의 쪽빛 물결이 동해의 바다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저 멀리 커피향이 좋다는 카페건물이 눈에 띈다. 벚꽃터널은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길옆에는 샛노란 개나리가 수줍은 듯 내 모습도 봐달라며 손짓을 하고 있는 듯해 잠시 멈추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2년 전 유치원에 다니던 개구쟁이 손주를 보는 것 같다. 어느새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으니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벚꽃터널에 취해 아내와 나는 도계 경계지역을 지나 보은군 회남 방면으로 차를 몰았다. 이곳은 대청호 상류지역이라고 한다. 농촌지역이라 농사준비를 위해 밭 주변에 검은 비닐로 포장해 쌓아 놓은 퇴비들이 눈에 띈다. 회남대교를 지나 조금 가다보니 주차가 가능한 휴게소가 보인다. 이곳은 마을 영농회가 오고가는 관광객들에게 농산물들을 판매하는 장소로 휴식도 취하면서 물건 구경도 하고 맘에 들면 사기도 하는 일석이조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봄나물 중에서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눈개승마’를 1kg짜리 한 봉지를 샀다.  

뜨거운 물에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무쳐서 먹으면 입안에 봄의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눈개승마'는 여러 해 살이풀로 울릉도에서는 삼나물이라고 불리며 나물로 재배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내와 나는 호반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여 눈앞에 펼쳐진 봄날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벌써 점심시간이다. 아내의 정성이 담긴 멸치와 소고기가 들어간 주먹밥과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기로 했다. 자연을 벗 삼아 식사를 하니 눈으로는 경치를, 입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년퇴직을 하고나서 해가 갈수록 아내와 여행을 가는 날이 많아졌다. 아들 둘은 장성하여 부모 품을 떠났기 때문에 집안은 둥지를 떠난 새 둥지처럼 적막감이 맴돌았다.

아내의 정성이 가득한 식사를 마치고 저 멀리 호반 위에 펼쳐진 벚꽃들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발하는 순간은 청춘이요, 꽃이 지며 바람결에 흩날리는 순간은 노년의 모습인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이 말은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는 말로 아무리 화려함을 자랑하던 꽃들도 얼마 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작년부터 벌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많이 폐사했다고 한다. 화사한 벚꽃에 벌들이 많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점심식사를 하며 호반의 경치를 감상한 후 판암동 근처까지 펼쳐진 벚꽃을 다시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 앞에 펼쳐진 꽃들이 좀 더 앉아서 좋은 경치를 눈에 담아 가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휴식을 취했던 장소와 이별을 고했다. 한 달 전에 하느님의 품 안으로 소천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의 모습을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가끔씩 웃어 보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벚꽃의 풍경이 올 때보다 갈 때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대청호반을 따라 굽이치는 도로에 펼쳐진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오후가 되자 기온이 많이 오르니 꽃이 더 만개하여 맵시를 뽐내며 패션쇼를 보는 것 같다.

차량들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길옆에 있는 음식점들도 사람들로 인해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꽃들의 잔치로 인해 살림살이가 힘들어도 오늘만큼은 모두가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어 이번 꽃구경은 삶의 활력소인 것이다.  

도로 양쪽의 벚나무가 기막힌 조화를 이루어 꽃 터널을 만들어 놓으니 온 세상이 벚꽃 세상이다.

아름다운 벚꽃 세상을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와 바람 등 자연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다행히 이번 주에는 비 소식이 없다고 한다. 주말이면 평일인 오늘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어 꽃들도 피곤하고 사람들도 교통체증에 힘들 것 같다.

약 20여 km에 이르는 벚꽃 길은 대전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어 동학사의 벚꽃 길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대전 중심부를 벗어나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아름다운 벚꽃 길을 아내와 함께한 여정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간직될 것이다.

어느 가수가 부른 벚꽃 관련 가사 중 일부를 흥얼거려 본다.

~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

봄날의 아름다움은 화려하지만 길지가 않다. 열매를 맺기 위한 짧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처럼 아름다움이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인생을 즐겨야 행복하다고 한다. 아내와 함께한 벚꽃 구경은 삶을 윤택하게 하고 활력소가 될 것이다. 걸을 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건강을 위하여 부지런히 희망을 손짓하는 봄날을 즐기고 싶다. (2024.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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