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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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변신
  • 지은이/ 월정 이 선 희
  • 승인 2018.04.1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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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월정 이 선 희

  

1년 전의 일이다.

아내 잃은 슬픔에 눈물로 범벅되어 울고 있던 내가 친구의 손에 끌려 한밭대 캠퍼스에 첫발을 내 디뎠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캠퍼스는 설레임과 두려움, 만감이 교차되는 현장이었다.

수업이 시작되자 나에게 넘겨진 A-4용지 한 장, 거기에 무언가를 써보라는 교수님의 말 한 마디는 나에게 태산같은 두려움을 안겨준다.

50여 년 전 대학졸업과 함께 신입사원시절, 그때에도 A-4용지 한 장을 건네 받았고 뭔가를 그려보라는 주문도 받았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내가 첫 발을 내 디딘 것이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 80을 코앞에 두고, 또 다른 두 번째의 첫발을 내 디뎌본다. 변신하기 위한 출발이다. 시를 써 보겠다는 것이다. 지나간 1년, 나는 커다란 변화 속에서 생활하여 왔다. 김선호 지도교수와의 만남, 같은 반 친구들과의 만남,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는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커다란 행운이 찾아왔다. 김용복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무언가를 쓰고도 부끄러워 손을 가리는 내 글을 보고 잘 썼다고 칭찬해 주는 게 아닌가.

용기가 났다.

정말 시인이나 된 것처럼 글을 썼다. 아니 내 마음 속에 서리서리 도사리고 있던, 먼저 떠난 아내에 대한 어찌 보면 항변이자 하소연이었다.

“여보, 어디 있어요? 나를 이렇게 홀로 놔두고 갑자기 어디로 갔어요?

하루에 한 편, 두 편, 또는 세 편까지도.

그렇게 모아져 어느덧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아내를 위한 시집,

"여보, 어디 있어요?"가 바로 그 잭이다.

아내의 영전에 이 책을 올리고 엉엉 울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도록 마구 흘렀다. 눈물을 쏟아 영정에 뿌리면서 용서를 빌었다. 먼저 가게 해서 잘못했다고.

그러는 사이, 나를 사람들은 나를 시인이라 불러주었다. 계룡출판사 판매대 위에는 내 시집이 전시되고 있었다. 서점에서 대하는 시집을 보니 또 눈물이 나왔다. 그 눈물은 아내에 대한 눈물이요, 김용복 형에 대한 채찍에 대한 눈물이요, 나를 한밭대학으로 불러준 김선호 교수에 대한 눈물이며, 시집으로 햇빛을 보게 한 리헌석 대표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두 번째 단추는 그렇게 끼워졌다.

그러나 지금, 내 가슴에 쌓인 아내에 대한 생각들을 쏟아내고 나니 텅 빈 가슴만 남았다.

'사랑한다.' '보고싶다.' '그리웁다.' 라는 말들을 내려 놓으려니 너무나 가슴이 텅 비어 허무하다.

그래서 그 허무함을 달래려 매일 김용복 형을 찾는다. 형수는 치매를 앓고 있는지 3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내 얼굴은 알아보고 반가워하고 웃어준다. 그래서 형 부부를 따라 효문화 진흥원에도 가고, 대청댐도 가고 ‘더 리스’에 가서 식사도 함께 했다. 어디 그뿐인가? 전북 진안군 구봉산 기슭도 함께 가서 구봉산 아로니아도 구입하고 죽염도 얻어왔다. 세 번째 발걸음을 내 딛기 위한 변신인 것이다. 아내를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나서의 또 다른 변신. 그것은 김용복 형 내외와 함께 시작해 보는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변신 될까? 나도 내 자 신의 변신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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