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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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개구리
  • 광장21
  • 승인 2018.09.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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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문 / 조각가, 수필가

 

 

 얼마 전 누군가가 공중에 띄운 드론을 어떤 맹금류가 낚아채 갔다는 뉴스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의 첨단문명이 한낱 날짐승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이 같잖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더니 이제는 “나는 놈 위에 뺏는 놈”이라는 속담이 나올 법도 하다.

 유난히 덥던 2018년 여름 끝자락에 자카르타 하계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경기들을 보던 중 머릿속에선 생뚱맞은 생각이 스멀스멀 일었다. 달리고 공을 다투고 하는 몸짓 이면으로 하찮아 보이던 갖가지 동물들이 겹쳐 보였다. 트랙을 달리는 선수들을 세렌게티의 치타가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몇 년 전 가공할 주력으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우사인 볼트가 경기 후 특유의 궁수(弓手) 세레머니로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보고 혹 코웃음을 치지나 않았을까?

 마이클 펠프스가 역영하는 모습을 물개나 수달이 보거나, 이신바예바가 장대로 도약하는 모습을 제 몸 크기의 수백 배를 뛰어오르는 벼룩이 본다면 어떨까? 넓이뛰기 경기를 나락메뚜기가 보고, 벽면을 아슬아슬 기어오르는 스포츠클라이밍을 원숭이나 다람쥐가 본다면 또 어떨까?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을 산지니 수지니 해동청이 보거나 물 위를 달리는 카누나 카약을 돌고래가 본다면? 4년마다 스타디움에 모여 나 잘났네 하는 인간들을 동물들이 지켜보며 낄낄거리고 있지나 않을까하는 생각이 불현 듯 떠올랐다.

장자(莊子) 소요유(消遙遊) 편에“하루살이가 어찌 밤과 새벽을 알며 매미가 어찌 봄과 가을을 알까?”라는 구절이 나온다. 장자는 또 외편에서“우물 안 개구리가 어찌 바다를 알까?”라고도 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인간들이 새겨들을 말이다. 때로는 우리도 그 하루살이나 우물안 개구리에 지나지 않는 존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참으로 하루살이 같은 인간들이 가지가지 한다. 몇 년 전 교육부의 나 아무개 정책기획관이라는 자가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는 막말을 내뱉었다. 그야말로 개·돼지보다 나을 바 없는 공직자 아닌가? 언젠가 제1야당 장 아무개 대변인은 자당소속 울산시장의 비리를 수사 중인 지방경찰청장을 향해“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돼지 눈에는 돼지로만 보인다고 한 무학대사의 말씀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밤과 새벽이 있는 줄도 모르는 하루살이 같은 공직자나 정치인이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또한 막말만의 문제인가? 광역시의 경찰수장을 하인 대하듯 하는 그 당상관(堂上官)의 오만함이야말로 현재 잘난 대한민국 선량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 주기에 씁쓸할 뿐이다.

 얼마 전 북쪽의 ‘우물 안 개구리’가 마침내 세상구경을 했다. 지구촌의 망나니 김정은이 국제사회의 압력에 오금이 저렸는지 문재인 대통령과 분단 70년 동안 없던 판문점 회담을 하고, 내친 김에 입만 열면 철 천지 원수라던 미국의 트럼프와도 만났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두 장면들은 세계적 관심 속에 연일 국내외 언론을 달구었다. 김정은 귀국 후 북한매체들도 특유의 선동적 억양으로 회담사실을 인민들에게 알렸고 이례적으로 영상도 공개했다. ‘친애하는 영도자 동지’가 세계 최강국의 트럼프에게도 꿀리지 않는다는‘세계적 위상’을 인민들에게 과시하려는 속셈에서였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 편집영상물 참 가관이었다. 문대통령이나 트럼프와의 회담에서는 나름의 예절도 갖추는 것 같더니 돌아가서는 역시 목불인견(目不忍見) 그대로였다. 지난 세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방문 때처럼 동원된 인민들이 카 퍼레이드 하는 ‘절대존엄’을 향해 꽃을 흔드는 장면도 그렇고, 집무실에서는 ‘양쪽으로 도열해 선’ 참모들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서 “나 이런 사람이야!”라 하듯 거들먹거리는 모습 또한 달라진 게 없었다. 그냥 우물 안 개구리가 잠시 뛰어 나왔다가 세상을 제대로 눈에 담기도 전에 ‘우물 왕’의 자리로 되돌아갔을 뿐이다. 우물 안이 그가 느끼고 인식하는 세계의 전부인 걸 어쩌겠는가?

지난해인가 자애로운 어버이의 모습을 보여준답시고 소아병실을 찾았을 때 병상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는 어이없는 모습이 보였었다. 인민의 어버이라는 자가 민주주의 개념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소양조차 체득치 못한, 그게 그의 진면목인 것이다.

 지금 남북 간 경제력 수준이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는데 현재 1인당 소득은 20여 배, 총량으로는 40여 배 정도의 격차라 한다. 우물 안 개구리를 어떻게든 달래서 언젠가 통일이 된다 해도 그 격차를 여하히 줄이고 융합케 할 것인가가 난제일 것 같다. 경제전문가도 남북문제전문가도 아닌 필자의 안목으로는 경제문제보다 세뇌된 인민들의 감성과 인식의 수준이 김정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

멀지 않은 날 평양남북정상회담이 예고된 시점에 되돌아 본 근래 김정은의 면모에 관한 소회이다.

#광장21 #장준문 #장자의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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