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의 ‘미르마루’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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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의 ‘미르마루’ 길을 걷다
  • 염재균 수필가
  • 승인 2022.02.22 2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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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 염재균 수필가
덕천 염재균 수필가

2022년 2월 20일(일요일)

입춘. 우수도 지나 한 발짝 성큼 다가온 봄의 기운을 시기라도 하듯 숨죽여 있던 늦겨울의 날씨가 예사롭지가 않다.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기라도 했는지 새벽부터 찬바람이 불어대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어 이대로 겨울이 끝나는가 싶더니 떠나기가 싫은지 일요일의 아침은 겨울의 맛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1일 확진 자가 2천 명을 넘어선 소굴을 하루만이라도 벗어나 자연과 벗 삼아 하루를 즐기기 위해 여행 겸 산행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28년간 190개국을 여행한 부산 출신 오지 여행가 000에 의하면 “여행은 길 위의 움직이는 학교에 가는 것으로 발로하는 독서라고 한다.” 누군가에 의하면 “독서는 책상 위의 여행이고, 여행은 길 위의 독서라 한다.” 그만큼 여행과 독서는 새로운 지식을 만나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만들어 갈 수 있어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간단하게 배낭을 꾸려 옷을 여러 겹으로 걸쳐 입고 얼굴을 스치는 찬바람을 맞으며 시내버스에 몸을 싣고 집결지 근처인 정류장에서 내려 구)시민회관 뒤로 걸어가니 같이 가기로 한 일행들이 먼저 와 추위와 싸우며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잠시 후에 대전00산악회 대절 관광버스가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여 반갑게 우리 일행들을 태우고 다른 집결장소로 향했다. 버스는 36인승으로 앞뒤 자리가 비교적 넓어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최종 집결지인 대전ic 근처의 원두막이라 불리는 곳에서 인원 점검을 한 후에 차는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질주하기 시작했다. 햇볕이 조금씩 내리쬐기 시작한 이후에도 추운 날씨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위해 차는 잠시 ‘벌곡 휴게소’에 들렀다. 아침식사는 콩이 들어간 밥과 시금치된장국 그리고 김치였다. 모두들 마스크를 쓴 채 피난민처럼 줄을 서서 종이컵에 담긴 음식을 배급받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로들 거리를 유지하면서 입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모습이 처량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는 것 같았다.  집에서 배낭을 메고 신발을 신고 있는데, 아내가 잘 다녀오라고 하면서 집에 있으면 편할 텐데 사서 고생을 한다고  한마디 한 것이 생각났다.

여행이나 산행이나 편안한 것은 없지만, 여행이나 산행을 통하여 새로운 것도 보고 느끼고 하면서 삶의 여유를 가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반찬도 부실한 아침 식사이지만 따뜻한 국에다 밥을 넣어서 먹으니 뱃속이 따뜻해진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어지고 있는 찬바람이 일행들을 차 안으로 밀어 넣는다. 차 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쓴 채 정적만이 흐르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의 차 안의 풍경들이 그리워지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 살고 있다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전남 고흥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산이 많아서인지 유난히 터널이 많고 길이도 길어 보인다. 차장 밖으로 저 멀리 지리산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산등성이에는 눈이 왔는지 하얀 모자를 쓴 것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3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곳은 오늘의 산행지이며 트레킹 코스인 전남 고흥군 영남면에 있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멀리 바다를 가로지르는 ‘팔영 대교’가 웅장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일행은 산행코스(12km 정도)와 트레킹 코스(8km 정도)로 각자의 능력에 맞게 나뉘었는데, 필자는 걷는 길이 완만한 트레킹 코스를 택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강한 바람이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용마을에 도착하여 용(미르)과 하늘(마루)를 주제로 조성된 해안 탐방 길인 ‘미르마루길’로 향했다.

도로에서 500m 떨어진 바닷가 근처에 있는 용바위를 보려고 걸어가는데, 남쪽이라 그런지 겨울인데도 마을에는 농사준비를 위해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들이 퇴비를 힘겹게 나르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젊은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떠나고 농촌이나 어촌에는 힘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다른 밭에는 추위와 싸우며 푸르게 자란 어린 양파 잎들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용바위로 가기 전 바위의 형상이 용머리를 닮았다 하여 ‘용두암(龍頭岩)’이라 불리는 바위를 마주했다. 화산활동으로 인해 용암이 분출했다가 굳어진 바위로 정말로 용의 머리 모양처럼 생겼다. 바로 옆에는 주택 한 채가 있었는데, 옥에 티처럼 어울리지가 않아 관광지에 어울리게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용에 관한 전설과 마을이름, 관광지 등이 많다고 한다.  제주도에 가면 유명한 ‘용두암’이 수호신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1974년 필자가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가서 해안가에 있는 신기한 용의 머리모양의 커다란 바위를 보며 자연의 놀라운 현상에 감탄한 적이 생각난다.      

바닷가에 있는 용바위는 고흥 10경 중 제6경으로 모습을 보려고 가려다 세차게 불어대는 찬바람 때문에 용의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르마루 길의 시작부터가 나무계단으로 이루어진 급경사 길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무계단을 오르니 웅장하게 생긴 용의 조형물이 어서 오라고 반긴다. 커다란 용이 살아나 포효할 것만 같은 생각에 몸이 움츠려 든다. 잠시 사진을 찍으며 사방이 탁 뜨인 전망대에서 쪽빛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를 보며 생각에 젖어본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비교적 완만한 탐방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솔향과 푸른 잎에서 뿜어 나오는 산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발걸음이 가볍다. 얼마쯤 가다보니 미르 전망대가 보인다. 80m 해안 절벽 위에 설치되어 있는 곳으로 용 두 마리가 승천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과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전망대 끝에 설치된 발아래 투명 유리를 쳐다보니 아찔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나로호를 닮은 전망대가 눈에 다가온다. 그곳으로 올라가 보고 싶은 욕망이 치솟는다. 다시 발길 따라가다보니  초입에 보지 못한 용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용바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용굴(龍窟)이 모습을 드러낸다.  승천하지 못한 용의 분노에 찬 울음소리가 들리던 곳이라는 표지판의 설명에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르전망대를 둘러본 후, 500m를 지나니 몽돌해변으로 이루어진 바닷가에 이르렀다.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사자의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사자바위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파도와 부딪히는 육신의 아픔에도 견디며 몽돌로 탄생하게 한 돌들이 위대해 보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어느덧 점심시간인 12시가 조금 넘었다. 몽돌해변의 사자바위가 보이는 전망대에 친분이 있는 8명이 둘러앉아 차 안에서 나누어 준 밥과 김밥 그리고 각자 준비해 온 반찬을 꺼내놓고 파도소리의 반주에 맞추어 성찬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성찬을 끝내고 잠시 몽돌을 보니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둥글납작한 돌을 힘들게 구해다가 장독 안에 무언가를 담아놓고 눌러 놓으신 어머니의 부지런한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몽돌이 널브러진 해안을 바라보며 시 한 수를 읊어본다.

 

                     몽 돌

 성난 파도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정신은 혼비백산

 쉼 없이 밀려오는/ 너의 울부짖음에/ 온몸은 상처투성이

 이리 둥글 저리 둥글/ 부서지고 깨어져/ 얼굴은 둥글 납작

 마음만은 천사/ 바다는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나서 춤사위

 오늘도 어제도/ 파도는 우직하게/ 할 일만을 고집하고

 맘에 드는 연인처럼/둥글 납작 멍든 돌 / 장독대에 모아놓고

 소중한 보물 인양/ 애지중지 어머니는/ 두 손 모아 빌고 빈다.

어느덧 가까이 보이는 우주발사 전망대로 가기 위해 이어지는 나무계단과 해안 절벽이 보이는 아찔한 낭떠러지를 지나 마침내 오르니  지상 7층으로 조성되어 있는 웅장한 모습이 보는 사람들을 압도하게 한다. 산 정상이라 여기에도 바람은 살아 있는 것처럼 일행들을 괴롭힌다. 전망대에 대한 호기심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올라가니 내부에는 커피숍이 있는 곳으로 주변을 전망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와 ‘나르호’가 발사됐던 우주센터의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실망의 전망대를 내려왔다. 

전망대 아래에는 몽돌해변과는 달리 모래사장이 있는 남열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온다. 비탈길로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따라가다보니 바닷가 쪽으로 90도에 가깝게 기울며 자라는 노송이 불어오는 바람에 앓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서 있었다. 그래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이곳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가 깔린 넓은 백사장과 아침을 여는 해돋이의 명소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오후라 일출을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산행이나 트레킹은 나이가 들을수록 힘들게 하지 말고 즐겨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준 하루였다. 해변을 따라 칼바람이 춤을 추고 있었다. 철이 지나 고흥을 대표하는 새콤달콤한 유자를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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