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명자 시집 '봄이요 봄, 일어나요'를 탐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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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명자 시집 '봄이요 봄, 일어나요'를 탐색하다  
  • 김용재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 승인 2022.03.02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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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삶의 역동성과 깨달음의 세계  
백명자 시집

백명자 시인은 나이 지긋한 70대 할머니 시인이며 지금도 열심히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부군(夫君)을 위한 간병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17년째 요양원 어르신들과 애환을 나누며 아픈 생활을 하고 있다.

부군께서는 2005년 4월 교통사고로 인해 뇌병변 중중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머리와 가슴에 의료기를 부착하고 살면서 오른쪽 다리를 18차례나 피부이식을 하였고 휠체어에 의지, 툭하면 응급실을 안방삼아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사고 전에는 건강 1인자의 남자였으며 금은 보석 가게 사장이었다.

부귀영화 세상에 다 돌려주고, 생의 마감시간을 밟고 있는 듯한 사랑하는 남편과, 같은 처지의 많은 어르신들의 외롭고 쓸쓸한 삶을 보듬어 달래고 있는 시인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분주하다. 슬픔과 아픔과 고통과 애절함 속에서 감사와 고마움과 사랑과 희망을 캐내며 바람의 문법이나 경전인 듯 일기를 쓰며 시를 그려내고 있다.

이번에 펴내는 '봄이요 봄, 일어나요'는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며 오래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부군과, 같은 처지의 요양원 어르신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요양보호사로서의 필링(Feeling)과 힐링(Healing), 그 숨비 소리에서 퍼져나온 휴머니즘, 그것이 곧 그의 시인 셈이다.

 

자신이 반쯤, 차에 깔려

생명줄을 당겼다 놓았다

생사의 갈림길에 누운 사람

바위덩이 만큼 부어오른

육신이 붕대에 감겨

중환자실에 미라처럼 심신을 누워있는 당신

살에 꽂은 수액줄

코에 넣은 산소줄

고요는 차라리 절규를 기다리며

당신의 기척을 찾고 있나

봄이요 봄, 일어나요

아무런 기별도 없이

 

어디서 민들레 꽃씨 날아와

고향의 봄으로 나들이 가잔다

나는 당신의 얼굴, 면도를 하고

손톱을 깎고 발톱을 깎는다

병실 가득 햇살이 찬다

               - <봄이요 봄, 일어나요> 전문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 병실 근황이다. 아픔이다. 처절하다. 한계 상황이다. 바위덩이만큼 부어오르고, 온몸이 붕대로 감기고, 중환자실에 미라처럼 누워있는 그 모습이 애절하다. 죽음 같은 고요보다 차라리 절규를 기다리며 남편의 기척을 찾는 아내의 심정은 수액 줄에 눈물로 흐르고 산소줄에 참 가벼운 생명으로 매달려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던가. 솟아날 구멍이 곧 생명인 것처럼, 민들레 꽃씨가 생명의 상징으로 병실에 날라온다. 희망으로 살아나 남편의 모습을 확인하며 면도를 해주고 손톱을 깎아주고 발톱을 깎아준다. 병실 가득히 햇살이 찬다. 사랑도 희망도 가득하다. 위험의 한계 상황에서 사랑과 희망을 이끌어내는 시심은 당연하고 용이한 듯하면서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만의 슬픔인 양 탄식하고 분노하는 성향이 앞서고, 감정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오히려 일반적이다. 그렇게 보면 이 시인의 창작 역량은 높게 주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인고의 벼랑길

온몸을 수액 줄에 감긴

중환자실 내 남편

뇌 수술 후 2년 차

이지러진 다리 피부 이식

실패 또 실패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생명길 찾는 기도만 4년 차

숨어 우는 눈물의 늪 속에

허우적대는 가는 생명줄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

수액 줄따라 길을 묻는다

                 - <수액 줄 따라 길을 묻는다> 전문

 

앞의 시와 같은 맥락이다. 수액 투여는 의술의 기초과정이지만 혈관과도 같은 그 줄이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방향 제시 끄나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수액 줄 따라 길을 묻고, 그 생명길을 찾는 기도를 4년 차, 아니 생명의 활력을 보고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올리는 것이다. 풀리지 않는 현실적 아픔과 뚫리지 않는 생명길의 확증을 소망하며 시인은 마침내 ‘하느님은 어디 계실까’ 의문을 제기한다. 몰라서 묻는 것도 아니고, 믿음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원망도 소망도 범벅이 된 채, 그러나 하느님의 결판을 촉구하는 강력한 희망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의술에 기대어 수액 줄 따라 길을 묻는 시인의 심정은 일상으로 깨어나는 남편의 모습에 소망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할 것이다.

 

현실에 던져진 내 젊음

어느새 기울어 갈 때

 

고뇌에 찬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그을린

당신의 시간들이

이제야 보입니다

 

깨지고 일어선 그 자리에

당신의 웃음꽃 피우기 위해

내 향기 소진될 때까지

피어 있겠습니다

            - <당신의 웃음꽃 피우기 위해> 전문

 

살면서 나 자신을 알고, 내 존재를 깨닫는 것은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삶의 성숙이요 생활의 지혜로 통한다. 부모나 큰언니나 남편이 생활의식과 깨달음의 원천적 위치에 있다는 추측은 작품 편편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시인은 결의에 찬 다짐과도 같이 ‘당신의 웃음꽃 피우기 위해’ ‘내 향기 소진될 때까지 / 피어 있겠습니다’라고 심중을 밝힌다. 거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젊음을 다 바쳤고 고뇌에 찬 자신을 보았으며 밑거름이 되어준 당신의 시간들을 지금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사부곡이면서 결의에 찬 내 삶의 꽃송이로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서둘지 않는 천성

작달막한 키에 홀로

줄어든 걱정만큼 늘어난 말솜씨

촉수만큼 꽃눈 뜨인 황홀경에 빠져

노을이 몰고 온 나른한 고독

중천에 뜬 달이

오르내리던 침묵은

상혼의 꼭지점

고속 도로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미라 같은 창백한 얼굴

                - <독백 언저리> 전문

 

<독백 언저리>는 앞의 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기 위해>와 같이 시심이 나에게로 옮겨왔다. 물론 고립된 나 자신은 아니며 인과관계의 상관성으로 연결이 된다. 고단한 퇴근길의 감상적 스케치이거나, 어떤 귀가길의 소외의 심정을 터치한 짤막한 가편으로 의인화의 촉수가 번뜩인다. ‘노을이 몰고 온 나른한 고독’이나 / 오르내리던 침묵‘은 나의 고독과 나의 침묵으로 상혼(傷魂)의 꼭지점이라 했다. 현란한 노을의 고독이나 그렇게 곱고 아름다운 달의 침묵이 모두 나의 슬픔이나 걱정이 되어 속상한 마음의 꼭지점에 있으니 고속도로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갑자기 미라 같은 창백한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미라는 결국 부패를 방지한 시체이지만 죽음으로써 떠났던 영혼이 다시 돌아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신앙적 믿음이 중첩되고 있어 하강심리만을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꽃눈 뜨인 황홀경에 빠질 수 있는 심리적 분위기는 생을 음미하는 건강한 정신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할 것이다. 시인의 시작 활동은 고난을 이기는 큰 방편이기도 할 것이다.

 

한 줌의 흙에 누워

달 같은 꿈을 꾼다

 

살 시린 세월 지나

겹겹이 찢기는

생채기를 낼 때마다

알싸한 매운 향의 저항

떨어지는 진주의

꿈은 조각나지 않았다.

 

내 안에 깊숙이 스며든

하얀 마음은

아직도 고결한 꿈을 꾸고 있다.

흙더미 짓눌러도

하얀 마음

달 같은 꿈을 꾼다.

              - <양파> 전문

 

양파는 우리 음식에서 필수적인 식재료이며 매운맛과 단맛을 함께 내는 채소로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많다. 항산화 작용이나 콜레스테롤 수치 저하 등 의학적 효능도 많다고 하여 만인이 즐겨 먹는다. 이렇게 널리 이름난 양파가 시인의 필력으로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가 살펴보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우선, 양파는 고향은 흙이다. 양파의 모양은 둥글둥글, 또는 동글동글 달덩이를 닮았다. 껍질이 겹겹이 쌓여있는 비늘줄기로 되어있다. ‘겹겹이 찢기는 / 생채기를 낼 때마다 / 알싸한 매운 향의 저항’이 있다.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며 진주가 떨어지는 꿈을 기대하고 있다. 진주는 액운을 막아주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보석의 여왕이다. 진주의 꿈까지 박혀있는 양파의 하얀 마음은 내 안에 스며들어 고결한 꿈으로 익는다. 검붉은 흙에 눌려도 하얀 마음, 달 같은 꿈을 꾼다. 흙과 겹겹이 찢기는 생채기는 양파의 현실적 고난과 아픔이지만 하얀 마음이나 달 같은 꿈, 그리고 진주의 꿈은 고결함과 그리움의 등가치이며 액운을 막아낸 진실과 행운의 믿음일 것이다.

 

다시 <담백함에 푹 빠지다>를 주목해 보자.

 

은빛 억새 사이로

혼자 나서는 산행

봄꽃의 화려함보다

먹색과 붓의 조화가

담묵, 농묵에서 우러나오는 신묘함

담아내고 싶어

하루도 거르지 않는 습작

우주의 모든 색을 함축한

담백함에 푹 빠졌다

오감을 자극하는 화려함 대신

깊은 성찰의 정결함

등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고

양쪽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아니다

은빛 머릿결 속에 이는

앞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눈을 감은 채로 연상하다

서법 문하생이 되고서야

비로소

진솔한 습작 길을 걷다

                - <담백함에 푹 빠지다> 전문

 

이 시는 서법 문하생으로서 진솔한 습작길을 걸으면서 담백함에 푹 빠진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작품이다. 안정되지 못한 내 주변의 환경을 조화롭게 극복하며 또 하나의 예술세계로 안착하려는 심리적 행동방향이 결국은 담백함에 푹 빠진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담백함의 세계와 서예의 세계에 대한 매력을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서예는 문자를 이용하여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담대하면서 섬세하게 표현하는 예술이다. 농묵(짙은 먹색) 중묵(중간 먹색) 담묵(엷은 백색)이 어우러진 거침없는 붓질을 통해 담백함의 세계로 빠져드는 묘미에 취할 수 있는 것이다. 담백함은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으며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한 상태이다. 모나지 않고 연하고 맑으며 산뜻하다. 차분하고 평온하며 사사롭지 않고 객관적이다(담담하다). 섞이지 않으며 타에 영향받지 않고 고상하다(아담하다). 신묘함이 있으며 깊은 성찰의 정결함이 있다.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서법의 세계, 그 담백함의 세계를 찾아본 것이다. 시인은 지금 시를 쓰면서 서법의 세계에 푹 빠져있는 것이다. 남편의 간호 사업, 코로나 팬데믹의 위험한 강물, 이지러진 환경과 추락한 내 정신의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서 그는 세상을 요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 『봄이요 봄, 일어나요』에 수록될 시 6편을 대표적으로 살펴보았다. 참척의 슬픔을 챙기고 있던 어머니의 곰삭은 육신의 무게를 가늠하며, 큰언니의 죽음을 맞이하던 숨비소리, 18년째 병마에 시달리는 부군을 지키며 요양보호사로 뛰어든 애환의 시심이 무르녹아있는 편 편을 정독하며 슬픔 속으로의 여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의 조절, 여과의 과정, 함축의 의미, 표현의 공감각적 기능 등 아쉬운 점 없지 않으나, 감정 그대로, 생각 그대로, 느낌 그대로 자연스럽게 속내를 풀어낸 돈독한 인정의 값은 깊은 울림으로 남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게 살필 수 있지만 그의 시의 속내는 슬픔이며 인내며 봉사며 사랑인 것이다. 집약적으로 말한다면 휴머니즘의 구현이다. 그러나 더욱 값진 것은 고난의 현실에서 찾는 자신의 삶의 방향과 정신적 각성의 세계에 도달하는 의식인 것이다. 넘어지고 무너진 의식을 일으켜 세우는 삶의 역동성이 깨달음의 세계에 닿은 결과일 것이다.

정진하시길 빌며 부군의 쾌유를 함께 빕니다.

백명자 시인
백명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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