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새싹 트는 봄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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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새싹 트는 봄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
  • 홍승표 시인
  • 승인 2022.03.1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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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표 시인
홍승표 시인

'젖빛 뽀얀 햇살 한 자락이 눈웃음을 날린다.

술래잡기하며 뛰어노는 물소리 끝, 늘어진 잠에서 깬 눈망울들이 후드득 물기를 털고 얼어붙었던 바람 앞가슴 풀어헤치듯, 가지마다 흐르는 수액(樹液)의 물결을 따라 해토(解土) 머리를 넘나드는 설렘들, 겨울의 꼬리가 감춰지는 바람의 빛과 향기, 원을 그리며 커다란 원을 그리며, 아지랑이 속 나비, 나비 떼… 저 눈에 넣고 싶은 가시 내 가시내야!

온 누리 숨을 몰아쉬며 아지랑일 떠올린다.'

-졸시(拙詩) '해빙기(解氷期)' 전문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나요?”

“당연히 물이 됩니다.”

“아닙니다. 봄이 되는 것이지요.”

겨우내 고뿔 앓던 대지가 숨을 몰아쉬기 시작합니다. 칼바람 지켜온 세월이 녹아내리는 실개천을 건너고, 남쪽에서 불어온 꽃향기가 온 누리에 가득합니다. 봄이 시작된 것이지요. 풋풋한 새소리가 여명의 적막을 깨우며 날아다닙니다. 겨울의 꼬리가 감춰지는 봄의 여울목, 바람 소리가 문을 두드립니다. 길 어귀 고목들이 귀 기울여 다가오는 발걸음 소릴 듣는 지금, 마음이 먼저 봄 마중을 나섭니다. 돌다리 건너오며 수런대는 아지랑이, 연둣빛으로 젖어드는 풀꽃 내음, 시나브로 출렁이며 노래하는 초록 바다, 꽃술 터지는 함성…. 또다시 봄이 시작된 것이지요.

옷고름 풀어헤치는 바람의 손길, 청태(靑苔) 낀 고목에도 새 움트는 봄날, 마음이 겨우내 접었던 날개를 펴고 신명 나게 날아오르지요. 고뿔이 사라지니 새싹이 돋아나고 연초록 산과 들이 수채화처럼 안깁니다. 문득 거울을 봅니다. 그 안에 누가 있습니다. 기억을 불러 모아 한 뜸 한 뜸 새겨봅니다. 잊었던 기억들이 눈 비비며 일어섭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일어나고, 저 멀리 솟는 햇덩이를 품고 강이 다시 흐릅니다. 강물에 비치는 길, 굽이치고 솟구치고 눈빛 환한 길을 다시 걸어갑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하늘 높이 오릅니다.

봄비가 오셨으니 금세 잎이 나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겠지요. 해맑은 웃음소리로 조잘대며 흐르는 신명 난 물소리에 미리 취해 봅니다. 저마다 다른 몸짓이 어우러진 둘레마다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합창합니다. 숲도 산도 고요하고 새 조차 날지 않을 때면, 안개로 산을 오르고 벌 나비로 날아봅니다. 빛 부신 메아리로 산허리도 휘돌아보지요. 둘레둘레 잎이 되고, 가지되고, 나무 되고, 숲이 되고, 산이 됩니다. 새소리가 요란하지요. 새순 돋는 둘레, 마음은 쪽빛 창이 되고 입술은 시어(詩語)가 됩니다.

해마다 봄이 찾아오지요. 그런데 계속된 코로나19 여파로 봄이 봄 같지 않았습니다. 섬진강 매화 향기 온 누리를 적시고 장미꽃이 피를 토하며 속절없이 울었지요. 이제 다시 물젖은 바람결이 알몸으로 날아들고, 낯 붉힌 햇살 한 자락이 무지개를 떠 올리면 옹골찬 마디마디 잎이 새로 돋아나고 꽃이 필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나와 더불어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라는 말이 있지요. 중천에 떠 있는 하얀 조각구름이 뜬금없이 봄이 왔으니 무엇을 할 것인지 묻습니다. 새로운 씨앗을 심고 싹 틔우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어 이웃과 나누고 싶다 했습니다. 이런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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