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한, 사는 법을 계속 배워라
상태바
살아 있는 한, 사는 법을 계속 배워라
  • 정온 수필가
  • 승인 2022.10.03 0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온 수필가
정온 수필가

"살아 있는 한, 사는 법을 계속 배워라."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BC 4~AD 65)-

이런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 떠오르는 사람이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이다.

기원전 4년, 로마의 정치인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세네카의 삶은 그 어떤 비극보다 더 처연했다. 폭군 네로의 스승으로 평생을 죽음의 공포 속에 살다 갔다. 불안감은 연약했던 그의 육체를 끝없이 괴롭혔고 수년을 투옥과 귀양살이를 반복했다. 네로를 암살하려던 반역 혐의에 연루됐다는 누명을 쓰고 자살을 명령받았다. 그는 소크라테스처럼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강요된 죽음조차 녹록치 않았다. 그를 쉽게 놓아 주지 않았다. 무릎과 발목의 정맥을 끊었으나 피가 잘 나오지 않아 욕조에 다리를 담그고, 이것도 효과가 없자 결국 증기탕에 스스로 갇히는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렀다.

☆삶을 공부하라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내가 더 지혜로워진다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더 넉넉해진다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배워야할 게 더 많아지고 마음공부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이 끝나가는 건 남은 셈을 해야하는 수학 공부가 아니다.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정답은 아니다. 정답은 각자의 몫이다. 양치질을 다시 배우고 지간신경종이 생겨 바르게 걷는 법도 배웠다. 몇십 년간 해온 걸 바꾼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다.

☆나이와 함께 버려야 할 것들
쉰 살이 넘으니까 갑자기 길가 장터 옷걸이에 바람에 나부끼며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몸뻬(もんぺ). 가 눈에 들어온다. 몸뻬의 정의는 여성이 일할 때 입는 헐렁한 고무줄 바지이다. '일바지' 또는 '왜 바지'라고도 한다. 몸뻬바지의 최고 장점은 키나 몸무게 아무 상관없이 [Free]사이즈라는 것이다. 헐렁헐렁하고 편한 것이 최고다. 미련없이 하이힐, 킬힐, 스키니, 청바지, 쫄쫄이, 티셔츠를 재활용 통에 던져 버렸다.

집으로 하나 데려오고 싶은데 선뜻 용기가 안 난다. 늙어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어린시절, 동네 할머니들께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같은 옷과 부처님 파마를 하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시 20대였던 난 아무리 나이 먹어도 절대로 저런 패션은 하지 말자라고 결심했는데!
수십 년간 같은 길을 걸어도 아니 보이던 빨강, 보라, 땡땡이 꽃무늬 몸뻬들이 자꾸 나를 유혹했다. 결국 난 마음을 빼앗기고 몸뻬 하나를 샀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몸뻬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때문이다. '편한 옷 입고 열심히 일하라'는 강제 명령이었다. 그 당시 몸뻬를 입지 않은 여성은 버스나 전차 탑승이 금지된 것은 물론 관공서, 극장 출입도 금지되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 정책이었다. 몸뻬를 입고 극장에 들어가는 상상을 해보자. 요즘 같아선 "시골서 오셨네요" 라고 무시당하기 쉽다. 아님 어디 아픈 걸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동네 할머니들의 머스트해브 패션 아이템이자 삶의 필수품인 몸빼. 우리 엄마의 엄마들도 즐겨 입으셨다. 소설가 <박경리> <박완서> 선생님들 께서도 몸뻬 찬양을 하셨다.
세월과의 싸움에서 누구나 패배자 일 수 밖에 없다. 인정할 건 이제 인정하자. 어둠이 서서히 김을 뿜어 세상을 적시듯이 세월은 그렇게 나도 모르게 나를 집어삼킨다. 조금씩 매 순간 우린 모두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 입게 되면 영원히 중독된다는 악명의 몸빼 첫 시도다. 일단 6천 원을 주고 용감하게 하나 사서 집으로 모시고 왔다. 파란땡땡이 무늬가 맘에 들었다. 패셔니스타 할머니들께서 입으시는 호피무늬를 살까 고민도 해보았다. 돈이 마구마구 들어온다는 전설의 빨간 빤스도 100호도 하나 집어 든다. 이십 대의 내가 절대로 이렇게 살지 말자는 결심은 다 흐트러진지 오래다. 멋지게 나이 든다는 건 어느 누구의 시선과 상관없이 당당하게 내 자율의지에 따라 입고 행동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사주신 남동생의 검정 고무신이 챙피했다. 엿장사에게 엄마 몰래 갖다주고 나무막대에 돌돌 감아주던 조청엿과 바꿔먹었다. 지금 난 고무신까지 살 기세다.
신발장 속 하이힐들을 정리했다. 3센티가 넘는 신들은 이제 영원히 이별식을 고해야 할 것 같다. 지난날 왜 그렇게 신발에 심취해 있었고 탐욕스러워 했는지! 엄마가 쌀 심부름을 보냈을 때도 신발을 사와서 가족들이 라면으로 때웠던 날도 있었다. 신발만 보면 꼭 사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떠오른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받아들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작은 일에도 웃어주고 큰일엔 담대해 지자. 아프다고 해서 비명을 질러봐야 아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슬픔도 기쁨도 아픔도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어찌보면 세월이 나를 때려야 비로소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 서투른 사랑은 누군가를 귀찮게 하거나 불편하게 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수백 년을 살아온 뱀파이어라 하더라도 삶은 계속 배워야 할 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인생에서 난 언제나 초보자이다. 

☆나이와 함께 받아들여야 할 것들 
세상이 끝도 없이 변화하는 요즘은 더 불안하다. 공룡이 멸종한 이유들을 가지고 학계는 끝없이 논쟁한다. 그 거대하고 많은 공룡이 멸종한 건 한두 가지 이유가 아닐 것이다. 인간도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현존하는 척추 동물 중 가장 오래 산다는 그린란드 상어는 500년 ~700년을 어찌 견디어 낼까? 연산군 때부터 지금까지 그것도 차갑고, 어둡고, 무서운 심해에서 눈이 점점 멀어가면서 어찌 버텨왔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시력부터 사라져가는 것이다. 

☆고장 수리를 철저하게 하라
나이를 먹는다는 건 오래 사용해서 고장 난 전자제품이나 차 수리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에는 품질 보증기간 이란 게 없다. 그냥 내 스스로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것이다. 치과랑 산부인과 가는 게 제일 두렵다. 치과는 얼마나 견적이 나올까가 가장 두렵고, 평소에 보이지 않던 엉성한 내 입안이 타인에게 서슴없이 드러나는 추악한 모습에 좌절하게 된다. 언젠가는 꼭 임플란트1+1이벤트를 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양치질부터 다시 배웠다. 산부인과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이 여자이기 때문에 부끄러워서 가기 싫다. 미루고 미루다 대공사가 되어버렸다. 관절염 때문에 걷는 법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지인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라.
엄마가 만병통치약처럼 여기고 14만 원이나 주고 산 관절염 치료제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3천 원짜리 미용 보습재였다. 이렇게 화가 날 수가 없다. 가장 취약한 노인을 사기쳤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자식들의 몫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또한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조심스럽게 알아보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번 사기를 당하는 건 사기꾼 잘못이지만 또 당하는 건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축제를 장례처럼 vice versa(장례도 축제처럼)
나이 들어감이 하나의 축제처럼 기다려지고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말에서 행복한 음표가 나오고 장례식에 위풍당당 행진곡을 틀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케익 위 크고 작은 초들의 숫자가 늘어감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고 타인의 고통에 모르핀(Morphine)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
"늙어서 불쌍해요"라는 젊은 사람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것도 한 것 없는 게 두렵지! 나이가 뭐가 두려워"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죽음이 어디서 너를 기다릴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니 어디에서나 그것을 예상하라
It is uncertain in what place death may await thee therefore expect it everywhere.

"살아있는 한 죽음을 배우라"
 이 또한 위대한 <세네카>의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