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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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간
  • 정온 수필가
  • 승인 2022.10.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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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온 수필가
정온 수필가

-때와 장소에 따라 마음이 변하는 게 아니라, 마음 자체가 자기 자리이니 그 안에서 지옥이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지옥도 될 수 있다.- <존 밀턴, 실낙원>

단, 하루! 우연히 삶 전체를 통째로 뒤흔든 그런 이상한 날이 있다. 그날이 그날이었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속은 다 파먹혀 버린 들쥐 가죽처럼 온몸이 텅 비어 버렸다. 코로나!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P대학 교수는 도끼로  가슴을 쪼개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고 글로 떠들었는데  그분 덕분에 C대학 병동에서 두번이나 뛰어내릴 뻔했다. 도끼로 찍혀본 적이 있는지? 언제쯤 그런 고통이 올까? 난 참을 수 있지만 만약 귀염둥이 은빈이나 제자들에게 고통이 온다면, 방송에서 떠들어대던 온갖 이상한 후유증이 생긴다면 어찌해야 할까? 그 죄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까? 확진 문자 받고 두 시간 만에 끌려간 병실엔 샤워실도 없어서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싸고 씻었다. 의료진들과 마주치지 않게 상황을 일일이 보고해야 했다. 유태인 학살 장면에서 본 독가스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고 견딜만했다. 마음이 아팠다. 우왕좌왕하는 정치인들과 자칭 전문가라고 떠들던 인간들이 문제였다. 이번 일은 생에서 처음 겪은 일이었다. 백년묵은 구미호나 오백년 묵은 뱀파이어라고 할지라도 이번 생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인생은 영원히 뗄 수 없는 초보운전 표시를 부착한 채 달려야 하는 길이다.

그냥 다 망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있었다"라고 말했다. 난 일어나 보니 망해 있었다. 쫄딱. 전 국민의 손가락질과 마녀사냥을 당했다. 추위에 켠 성냥 한 개비 때문에 전국이 다 타버렸다고 욕먹고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야 겨우 동정과 위로를 받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그렇게 버려졌다.
세상에서 제일 깊은 호수인 바이칼호에는 일 년에 한두 번씩 거대한 깔때기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지하의 문이 열린듯한 기이한 소용돌이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죄인들의 영혼을 지하 세계로 끌고가는 "악마의 깔때기"라고 부른다. 아무런 준비도 장비도 없이 바이칼호수의 바닥으로 끌려간 느낌이었다. 지옥문을 경험했다. 그것도 살아서! 어디서 다시 일어나야 할까? 신조차 용서가 안 된다. 우린 모두 틀렸다. 확진자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서로에게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소리치는 광기의 시대였다. 친구, 친척, 이웃 할 것 없이 서로가 피했던 광란의 시간이었다.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였다. 미친 듯한 시간, 신들린 듯한 시간, 용케도 잘 견뎌 왔다. 이제서야 겨우 소리내어 울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서러움이 밀려온다. 숫자놀이에 한바탕 놀아난 느낌이다. 기억해 두지 않으면 언젠가 인간은 망각하기 마련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해야하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왔다. 기억하기를! 기록하고 전해 주기를! 다시는 이런 실수가 일어나지 않기를, 누구에 대한 그 어떤 원망도 아니고 단지 이런 상황이 또 오면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틀딱이나 꼰대라는 욕을 먹을 각오로) 50대에 인생의 어른이 돼서 경험의 법칙을 전해 주고 싶다.

먼 훗날, 2500년쯤 미래의 교과서에< 조침문>이나 <동명일기>처럼, 내 글이 실린다면 어떨까? 아이들이 수능 문제를 보면서 "뭐 이런 엿 같은 시대가 있었어?"라고 욕할 수도 있다. 미래에 다른 전염병이 유행할지라도 코로나라는 코웃음칠 코믹 질병쇼가 또다시 도래할지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내가 본 모든 것들을 흔들림 없이 진솔하게 남기고 싶다.
힘들다는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막막함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고통에 고통을 더한 시간이었다. 내가 멕시코의 유명한 화가 프리다 칼로처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면 온몸에 가시 박힌 자화상을 그림으로 남길 텐데.

내가 프랑스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처럼 노래를 잘 부른다면 "아뇨, 난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현란하게 혀라도 굴릴 텐데.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 그나마 어설픈 글이라도 독수리 타법으로 칠 수 있어서  글로써 그릴 수 있다는 게 유일한 나만의 위안이다. 코로나 372번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물론 난 글을 쓸 때마다 '요즘 누가 글을 읽을까?' 하는 안도감에 편안한 마음으로 쓴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이름과 생명이 붙어 고통을 느꼈던 시간들! 힘든 시간이었다. 핏발선 눈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루시퍼처럼 슬픔과 분노가 엉킨 내 자화상이 그날 이후 영정사진처럼 가슴 한가운데 놓여있다.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라고 말하기엔 그 말조차 사치고 금지되었던 시간이었다. 인생 계정 삭제나 인생 톡방 나가기라도 있었다면 과감하게 눌렀을 것이다. 과거라고 하기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너무 생생하고 어느 정도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 과거나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거대한 손아귀가 나를 꽉 잡고 있다. 바오밥 나무의 뿌리가 내 뇌를 잡고 흔들었다.

힘들다!

한 사람 한 사람 확진자가 늘어날 때마다 학창시절 벌받을 때 동지를 얻는 기분이었다. 내 무죄를 입증하는 증인들을 한 명씩 확보하는 것 같았다. 
 그 2년 동안의 세월이, 타인의 힘듦이 내게 유일한 위로였던< 악마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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