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실(糸)’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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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실(糸)’의 배경
  • 정미숙 영화 평론가
  • 승인 2022.11.2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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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숙 영화평론가

이 영화(2020년)는 일본의 ‘나카시마 미유키(中島みゆき)’의 노래를 모티브로 영화화한 작품으로, 남·녀 두 사람이 헤이세이(1989)시대의 변천과 함께 시작되는 18년간의 장대한 러브스토리로 펼쳐져 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특성상 사람들 사이의 만남인 ‘인연’에 대해 신중한 무게감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다. 가령 일본의 다도(茶道)에도 ‘이치고 이치에(一期一会)란 말이 있다. 사람은 평생 한번밖에 만날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것이 다도로 유명한 일본에서, 인연의 소중함에 대한 일본인들의 정신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문구라 생각한다.

“실”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또한 가로줄과 세로줄이 얽혀 하나의 면이 완성되듯, 너와 내가 만나 서로의 인연이 되고 우주가 된다는 표현으로 애용되고 있다. 이는 ‘실’이란 노래 가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우연히 만났는지 우리들은 아무것도 몰라

언제 우연히 만나게 된 건지를 우리들은 몰라

어디에 있었는지 어찌 살아왔던 건지 먼 하늘 아래 둘의 이야기

세로 실은 당신, 가로 실은 나, 날실은 당신 씨실은 나.

이 실들이 엮어 빚어낸 천은 언젠가 누군가의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줄지도 몰라. 날실은 당신 씨실은 나, 만날 수밖에 없는 실이 만나게 된 것을 사람들은 행운이라 부른다지요…”

‘실’의 줄거리

헤이세이(1989.1) 연호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주인공 렌(漣), 그가 13살이 되는 어느 날 불꽃놀이 축제에 아오이(葵)가 참가하고, 불꽃놀이가 끝나갈 무렵 급히 도착한 렌의 자전거가 공중비행하며 아오이(葵) 앞으로 떨어지며 렌이 나뒹군다. 이에 놀란 아오이(葵)가 렌(漣)에게 반창고를 건네주지만 렌은 오히려 아오이를 향해 “괜찮아?”라는 한마디로 팔에 붕대가 감겨 있는 아오이를 위로한다. 이 한마디가 둘만의 운명적인 만남의 기폭제가 될 줄이야… 이후 축구시합이 있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렌은 아오이에게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고 만남을 약속한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그녀,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그가 알아낸 것은 친엄마의 애인, 즉 양부에게 오랜 기간 심한 학대를 받아왔었고 엄마조차 이를 방관한 상태에서 그의 몸에 학대의 흔적은 쌓여만 간 것이다. 이를 발견한 렌은 아오이의 학대를 피해 도망치지만 다시 발각된 둘은 모친에 의해 도쿄로 끌려오게 되면서 이들의 만남도 두절된다. 이후 아오이를 지키기 위한 렌의 마음은 깊어만 가는데… 

그리고 8년 후, 렌은 친구의 결혼식에 축하 인사차 참석한 곳에서 꿈에도 그리던 아오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당시 아오이는 렌을 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아오이에게 고급 자동차로 마중 나온 남자가 있었고 이를 알게 된 렌은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아오이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고 힘이 되어주며 서로 의지해 지내는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사업적인 일로 경찰을 피해 약간의 돈을 남기고 떠나가 버린다. 다시 혼자가 된 아오이…

세월이 흘러 ‘치즈공방’을 운영하고 있던 렌은 동료인 연상녀와 동거를 시작하고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래도 “결혼에 후회는 없었다.”는 말을 남기고 병사하는 동거녀.

한편, 도쿄에서의 아오이는 다시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일에 열중한다. 사업 수완이 남달랐던 아오이는 싱가폴에 나가 친구와의 동업 등 몇 번의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친구의 배신으로 또다시 실패의 쓴맛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간 아오이는 우연히 꼬마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이름은 ‘유이(結)’, 꼬마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자신을 꼬옥 안아주면서 “엄마가 울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꼭 안아 주렴”이라고 했다며 아오이를 위로한다. 이에 “좋은 엄마구나”란 말로 화답하는 아오이… 유이가 한 말은 죽은 엄마가 남긴 마지막 말이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꼬마 아이가 바로 자신이 평생 잊을 수 없었던 렌의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극적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감상평

영화에서 ‘실 팔찌’는 그들에게 인연의 상징적 물건이 된다.  무대가 홋카이도인 것 역시 나카시마 미유키가 홋카이도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영화 마지막 신에 홋카이도 자연 속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오이의 모습, 턱시도 차림의 렌과 귀여운 딸 유이, 이 셋의 결혼식의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유이(結)’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렌과 아오이, 이 둘의 실을 매듭으로 완성시킨 어린 딸 유이. 이들을 에워싼 결혼식장의 지인들 역시 각자 살아온 길에서 우연한 실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의 사람들인 것이다. 너무나 따뜻해서 그들의 환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아련히 남아 있다.

“사람이라는 인연은 이렇듯 소중하고 따뜻한 것일까”를 떠올리는 ‘실’이린 인연에 대해 오래 간직하게 되는 영화라 생각한다.  

특히,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스다마사키, 코마츠나나’ 의 세 번째 호흡을 맞춘 이 작품으로 이후 이들은 실제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고 하니 ‘실’를 모티브로 한 기적이라는 끈끈한 ‘인연(因緣)으로 우리의 감성을 일깨우고 일본인의 세계관이 돋보이는 감동적인 영화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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