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歲寒)의 경구(警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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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歲寒)의 경구(警句)
  •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2.12.1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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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인문학 교수

제12편: 세모(歲暮)에 생각하는 세한(歲寒)의 경구(警句)

 

호랑이의 신령(神靈)함과 용맹(勇猛)함이 희망이었던 임인(壬寅)년이 서서히 멀어져 간다.

그 임인 년에 우리는 격동의 사건들을 겪었다. 우선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되었고, 외교, 경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는 듯했으나, 정치적 변화만은 여전하여 여소야대의 정국으로 민생과는 무관하게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있다.

거기다가 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드러나고, 신세력의 자체 권력다툼, 신. 구세력의 파열음(破裂音)은 정말 지겹고 한심함을 넘어서 국가위기로까지 평하기도 한다.

겨울이 되고 연말이 가까워지니 만상(萬象)이 쓸쓸하고, 외롭게만 느껴진다. 모든 초목은 잎이 다 떨어져, 외로이 떨고 있고, 날씨는 싸늘하다 못해 한기(寒氣)가 매섭다.

문득 뒷산에 한 여름철에나 볼 수 있는 청정(淸淨)함의 소나무 숲이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더욱 싱싱함을 뿜어내는 장엄한 모습이 새삼 신선하게 느껴진다.

“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論語 子罕)

위 공자의 말씀에 대해 어느 학자는 “선비가 궁(窮)할 때에 절의(節義)를 볼 수 있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충신(忠臣)을 알 수 있는 것이니, 배우는 사람들이 반드시 덕(德)에 완비하고자 한 것이다.”라고 그 진의를 보충하여 설명하고 있다.

후한서(後漢書)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볼 수 있는데 곧 “疾風知勁草 嚴霜識肖木(질풍지경초 엄상식초목/ 세찬 바람이 불 때 비로소 쓰러지지 않는 굳센 풀이 어느 것인지를 알 수 있고, 혹심한 서리가 내릴 때 비로소 곧은 나무가 어느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시절이 좋을 때는 모두가 애국자로 자처하기 때문에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지 알 수 없지만, 시절이 나쁘게 된 후에는 진정한 애국자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애국자인 체한 사람이 구별된다.

내가 부귀(富貴)할 때는 모두가 나와 진정한 친구인 체 하므로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미천(微賤)해진 후에는 나를 이용하기 위하여 친해진 사람들은 떠나갈 것이므로 진정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위의 인용문은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비판하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곧 권세를 잡은 사람에게 벌 떼처럼 모여들어 아첨하다가 권세를 잃으면 하루아침에 외면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변치 않는 지조(志操)를 보여주는 사람을 우리는 그 절개를 추위에도 변치 않고 푸름을 간직하는 소나무나 잣나무에 비유한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세한도(歲寒圖)이다.

세한도(歲寒圖)는 조선 후기에 화가인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문인화이다. 김정희(金正喜)는 55세(1840년) 때 윤상도(尹尙度)의 옥사에 연루되어 지위를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김정희는 유배지에서 사제(師弟) 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인 역관(譯官) 이상적(李尙迪)에게 1844년 답례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주며 진정한 고마움의 서신을 보낸다.

추사(秋史)는 세한도 그림에서 제자인 이상적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늦게까지 그 청정함을 간직하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志操)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지난해에는 만학(晩學)과 대운(大雲) 두 문집(文集)을 보내왔고, 올해에는 또 우경문편(耦耕文編)을 보내왔으니 이는 세상에 흔히 있는 일 아니다. 더구나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으로 몇 년을 두고 얻은 것이니, 한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도도하게 오직 권세와 이익만 좇거늘, 이같이 마음과 힘을 다해 구한 것을 권세와 이익이 있는 자에게 보내지 않고 바닷가의 초췌하고 메마른 사람에게 보내주었도다. 세간의 권세와 이익만 좇는 자들은 태사공(太史公/사마천)의 말대로 ‘권세와 이익으로 합한 자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소원해지는 것이다.’ 그대도 역시 세상의 도도한 흐름 가운데 있는 사람인데, 스스로 초연하게 권세와 이익을 좇는 도도한 흐름 밖으로 벗어났으니 권세와 이익의 대상으로 나를 보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이 틀린 것인가? 공자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을 통해서 시들지 않는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이상적의 두터운 정성과 변치 않는 마음, 이에 대한 김정희의 감격이 잘 나타나 있다.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 쓸쓸하게 유배생활을 하던 김정희는 이상적의 후의(厚意)로 잠시나마 염량세태를 잊고 위안(慰安)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이해(利害)가 교차하는 지점이나 난국(亂國)은 사람됨을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이해에 초연(超然)함이나 난국에서 변치 않는 지조(志操)는 사람을 감격시키는 것이다.

이 세한도와 서신을 받은 이상적은 감격에 겨워 몸을 떨며 통곡(痛哭)하였다고 한다.

집안이 가난할 때라야 좋은 아내가 생각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라야 어진 재상이 생각난다.(家貧則思良妻 國難則思賢相/가빈즉사양처 국난즉사현상). 

지금 아픈 것은 아름다워지기 위함이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더 멀리 퍼뜨리려면 종(鐘)은 더 세게 맞아 더 아파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아플 때 우는 것은 삼류이고, 아플 때 참는 것은 이류이고, 아픔을 즐기는 것이 일류 인생이다" 라고 했다.

한 해가 저무는 막바지 ‘나는 혼란의 세태에 편승하지 않고 청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는가?’를 한 번 돌아보는 시간도 의미 있는 처세일 것이다.

오늘의 반성(反省)이 내일의 도약(跳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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