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족산 둘레길을 따라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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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둘레길을 따라걷다
  • 염재균/수필가
  • 승인 2023.03.0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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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천 염재균/수필가
  염재균/수필가

2월이 저 멀리 가고 봄이 시작된다는 3월의 첫날이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파고다공원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자주독립의 나라임을 표방한 민족운동을 기리기 위한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다.

그날의 함성이 아직도 들리는 듯 내 가슴은 요동치고 있었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서일까 날씨마저도 하루 종일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보이며 봄이 다가오는 것을 시샘하기라도 하듯 찬바람이 활개를 치고 있다.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꺼내어 창문 밖에 걸었다. 힘차게 나부끼는 태극기가 그렇게 자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아쉬운 점은 필자가 살고 있는 60세대 중에서 10개의 태극기만이 펄럭이고 있어 나라사랑의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애국선열들이 보면 통곡을 하며 꾸짖을 것만 같아 보여 가슴이 미어진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교육행정에 봉직하다가 정년퇴임한 다섯 명의 지인들과 등산을 가기로 한 날이라 둔산동의 탄방역 근처에서 모였다. 3개월 만에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건강여부를 묻는 것이 인사였다. 장동의 산림욕장 입구에 10시경에 도착하니 주변에는 등산하려온 차량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었다.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에 간신히 주차를 한 후에 입구로 다시 오니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어묵국물이었다. 다른 포장마차에서는 벌써부터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분들도 눈에 띈다. 산행을 하러 온 건지 나들이를 하러 온건 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를 즐기기 위해 온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입구를 조금 걸어가다 보니 공원조성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포크레인 소리가 조용하던 숲속을 잠시 깨우고 있다. 시민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맨발걷기의 성지라 불리는 계족산 황톳길 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고, 길 옆에는 2022년도 국가숲길로 산림청에서 지정된 대전둘레산길을 축하하는 글귀도 보인다.

 누런 황톳길이 시작되고 있다. 날씨가 싸늘해서인지 맨발로 걸어가는 등산객은 눈에 띄질 않았다. 그동안 겨울철이어서 그런지 황토가 많이 씻겨나가고 작은 돌들과 나뭇잎들이 임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 모두가 60이 넘은 세대라 힘든 등산은 하지 않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잘 가꾸어진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있는 왼쪽으로 접어드니 작은 연못에는 아직도 얼음이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대전지역 중심부의 기온보다 산속의 그늘진 곳이라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이곳 계족산은 아직도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무들 사이에 놓인 쉼터 의자가 잠시 쉬어가라고 하는 듯 손짓을 하고 있는 듯 해 간단하게 간식을 먹기로 했다.

 필자가 가져간 삶은 계란과 먹음직스런 귤과 그리고 총무가 가져온 농부들이 힘든 일을 할 때 즐겨 마시던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니 모두들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나는 얼굴표정이다.

누런 황토색 같은 잎들이 모두 떨어진 나목(裸木)의 메타세콰이어의 가지들이 찬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며 따뜻한 봄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우리 일행은 다시 힘을 내어 황톳길과 만나는 지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이 공휴일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그 중에는 가벼운 운동복차림으로 달리기를 하는 열혈 젊은이들도 눈에 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걷다보니 계족산성(雞足山城)으로 향하는 입구에 다다랐다. 산성으로 올라볼까 하다가 힘든 산행은 하지말자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산성대신 둘레 길을 따라 걷다가 산디마을로 향하는 임도로 내려가기로 했다.  

이곳의 계족산성은 삼국시대 때 백제의 유명한 산성의 하나로 신라와의 국경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중요한 군사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전과 인근의 옥천지역에는 유난히 산성이 많다고 한다. 그만큼 지리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걷고 또 걷다보니 황톳길이 끝나는 지점에 흙묻은 발바닥을 씻고 가라며 놓인 바가지와 샘터가 눈에 들어온다. 둘레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배려요, 충청인의 인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시시각각 불어오는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반디마을로 향하는 삼거리에 다다르니 벌목을 한 골짜기의 민낯이 얼굴을 찡그리게 한다.

속살을 드러낸 골짜기는 폐타이어가 버려져 있고, 경사가 급한 곳은 홍수라도 나면 많은 흙과 함께 벌목하면서 남겨진 나뭇가지들이 물길을 막아 산사태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온다.

하산하는 임도 길은 오를 때와는 달리 비교적 힘이 들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에 잘 가꾸어진 어느 가문의 묘소와 수령이 오래된 아름드리 노송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우리들이 조상들의 산소들을 잘 돌보고 가꾸는 마음이 지속될 때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효를 실천하게 하는 교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한참을 걷다보니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을로 향하는 농로길이 나타났다. 길옆에는 전지를 끝낸 복숭아밭과 사과밭이 우리 일행을 마주보며 웃고 있는 듯 보였다.

또 다른 곳에는 타산이 맞지 않아서인지, 일손이 없어서인지 찢어진 비닐만이 바람에 흩날리며 흉물스럽게 서있는 텅 빈 비닐하우스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시내버스 종점인 장동의 반디마을에 도착을 했다. 아직도 주차해 놓은 곳까지는 걸어서 1.6km를 더 가야만 한다.

걸으면서 마을을 살펴보니 음식점이나 가게가 눈에 띄질 않는다. 마을이 작다보니 운영을 하다보면 적자를 못 면할 것 같기 때문은 아닐까? 

 필자가 어릴 적 살던 고향마을도 구멍가게를 했던 분들이 외상에다 적자로 얼마간 운영하다가 폐업한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다. 더군다나 요즘은 교통수단이 다양하여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부르는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제 제5호인 성황당 나무와 돌탑을 볼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장소라고 한다.

 어릴 적 마을 입구나 언덕에는 마을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커다란 나무와 돌로 쌓은 탑이 있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제를 올리며 무사 안녕을 빌었던 곳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지고 이곳 반디마을처럼 소중하게 문화유산을 지키고 있는 곳이 자랑스러운 마을이라 부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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