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지교(三遷之敎)와 단기(斷機)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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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지교(三遷之敎)와 단기(斷機)의 교훈
  •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3.03.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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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교육에 현명(賢明)했던 맹자 어머니의 삼천지교(三遷之敎)와 단기(斷機)의 교훈
장상현 인문학 교수

제18편: 삼천지교(三遷之敎)와 단기(斷機)의 교훈

 

3월이 되었다.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는 3월이 가장 중요한 기다림이 되는 달일 것이다.

새로운 입학(入學)과 또는 학기(學期)가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누구나 관심을 갖게 되고 희망과 기대를 공유하게 된다.

자식의 ‘인간다운 처세와 가치 있는 삶’은 부모 된 자면 누구나 소원하는 바일 것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고 지속적인 활동이 교육(敎育)이다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우리는 일찍이 약 2,400여 년 전의 현명한 어머니를 만나고 있다. 그가 바로 자식의 교육에 대해 남달리 헌신한 일화를 남긴 맹자의 어머니이다.

BC 371년경 추(鄒)나라에서 태어난 맹자(孟子)의 어머니를 맹모(孟母)라 칭(稱)한다.

처음에는 맹자의 집이 묘지(墓地)근처에 있어서, 맹자가 어려서 즐기는 놀이란 묘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 죽음을 슬퍼하며 발을 구르는 의식과 시체를 매장하는 일을 흉내 냈다. 맹모는 “여기는 우리 자식이 있을 만한 곳이 못 되는구나”하고는 시장(市場)근처로 이사를 갔다. 그랬더니 거기에서 맹자는 물건 파는 상인들의 일을 흉내 내며 놀았다. 맹모는 “이곳 역시 우리 자식을 키울 만한 곳이 못된다.”고 하고서 학교(學校)근처로 다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맹자는 제기(祭器)를 배열하고, 예(禮)를 갖추어 나아가고 물러나는 의식을 흉내 내며 놀았다. 맹모는 “여기야말로 우리 아들을 키울 만한 곳이구나!” 하고 그곳에 눌러 살았다.

그 후 맹자는 성장하여 군자(君子)가 갖추어야 할 육예(六藝)를 익혀 마침내 대학자(大學者)의 명예를 얻었다.

군자가 말하기를 “맹모(孟母)는 사는 곳을 옮기면서까지 자식을 잘 가르쳤다.”고 했다. ‘시경(詩經)에 “저 착한 양반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위 고사는 이른바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란 고사성어를 남겼다.

맹자가 젊은 시절 한때 배움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베를 짜고 있던 맹모가 물었다. “배움이 어디까지 이르렀느냐?” 맹자는 “그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맹모는 짜고 있던 베를 칼로 싹둑 잘라버렸다. 맹자가 두려워 그 까닭을 물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학문(學問)을 그만둔 것은 바로 내가 이 베를 중간에서 잘라버린 것과 같다. 군자란 배워서 바른 이름을 세우고 물어서 지식을 넓혀야 한다. 그렇게 하면 가만히 있어도 편안하고 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피해를 멀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배움을 그만둔다면 어찌 아내와 자식을 입히고 오래도록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 여자가 생업을 포기하고 남자가 덕 닦기를 게을리한다면 도둑이 되지 않으면 남의 심부름을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이에 맹자가 두렵게 여겨 아침저녁으로 학문에 힘써 쉼이 없었다. 맹자는 자사(子思)에게 배웠으며 마침내 천하에서 이름난 학자가 되었다.

군자가 말하기를 “맹모는 어머니가 되는 도리를 알았다”고 했다. ‘시경(詩經)에서 “저 착한 양반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맹모단기(孟母斷機)❯’라는 고사성어로 교훈을 삼았다.

그 후 맹자가 장가를 든 뒤의 일이다. 맹자가 방에 들어가는데 부인이 방 안에서 웃옷을 벗고 있었다. 맹자가 이를 불쾌하게 여겨 돌아서며 다시 들어가자 않았다. 부인은 시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자신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주기를 청했다. “저는 부부(夫婦)의 도리를 행함에 방안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방안에 혼자 있으면서 그 예를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그가 보고 화를 내며 불쾌히 생각한 것은 저를 손님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도리는 손님방에는 머무르지 않는 것이오니 저를 저의 부모가 계신 곳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그러자 맹모는 맹자를 불러서 타일렀다. “예(禮)에 의하면 문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누가 있는가를 묻는 것은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서다. 또 마루에 올라갈 때 인기척을 내는 것은 안에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방을 들어갈 때 눈길을 반드시 아래로 내리는 것은 거기 있는 사람의 허물을 보게 될까 조심해서이다. 지금 네가 예(禮)를 잘 살피지 못하고 오히려 아내에게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책망하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이냐?”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맹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여 부인에게 사과하고 떠나지 않게 했다.

군자(君子)가 말하기를 “맹모는 예(禮)를 알뿐더러 시어머니가 갖추어야 할 도리에도 밝았다”고 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입실지례(入室之禮)라는 용어로 모범을 삼고 있다.

위 내용은 전한(前漢)의 사상가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 수록된 내용이다.

역사 기록상 현모(賢母)의 대표적인 인물로 주실삼모(周室三母/ 태강, 태임, 태사)와 맹모를 꼽고 있다. 우리나라 현모는 한석봉(韓石峯)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을 꼽는다. 자식을 위해 특히 교육을 위한 헌신은 어머니가 지니고 있는 거룩한 임무와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농담이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를 따라올 수 없는 5가지 중에 하나가 아줌마 파워라고 한다.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어머니들의 자식 교육 열풍에 힘입은 우리나라 자랑스런 학도(學徒)들이 어머니의 헌신 아래 열심히 공부하여 전 세계의 인재로 인정받고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된 것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나라를 운영함에 지도자의 최우선 정책은 민생경제(民生經濟)이다. 그다음은 국방(國防)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가를 짊어지고 갈 인재(人才)를 양성(養成)하는 교육(敎育)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 학기가 되니 자식 교육이 더 새롭게 느껴진다.

국가의 인재 양성은 어머니의 몫도 중요하지만 국가적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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