魯共公擇言(노공공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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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共公擇言(노공공택언)
  •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3.04.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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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인문학 교수

제 20편 魯共公擇言(노공공택언) : 노공공이 말을 기리다

 

이 글은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 나오는 글이다.

위(魏)나라 양혜왕(梁惠王)이 제후(諸侯)들에게 주연(酒宴)을 베풀었을 때, 노공공(魯共公)이 양혜왕의 사치(奢侈)와 교만(驕慢)함을 비유로 간언(諫言)한 내용을 서술한 것이다.

택언(擇言)이란 좋은 얘기를 선택한다는 뜻이다.

양혜왕(梁惠王)은 대공(大功)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당시 한ㆍ조(韓ㆍ趙)나라를 패배 시키고 국세(國勢)가 바야흐로 강해져서 노(魯)나라ㆍ송(宋)나라 등 각국의 국군(國君)들을 조정(朝廷)으로 초청하여 득의양양(得意揚揚)한 태도로 자신을 과시하고 있는 터에 노공공(魯共公)은 사실(史實)을 들어 양혜왕을 혹독하게 풍자(諷刺)하고 있다.

양혜왕 위영(魏嬰)이 범대(范臺) 위에서 제후들에게 술을 권하였다

모두들 술기운이 그윽해지자 노(魯)나라 공공(共公)에게 술잔 들기를 청하였다.

공공(共公)이 일어나 자리를 비켜서며 진언하여 말하기를

“옛날에 제녀(帝女)가 의적(儀狄)에게 술을 만들게 했는데 맛이 좋아 이를 우왕(禹王)에게 바쳤습니다. 우왕이 그 술을 마시고 매우 달게 여겼으나 오히려 의적(儀狄)을 멀리하였는데 나중에 그 좋은 술을 끊으면서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술로써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이 한밤중인데도 식욕이 없어 출출함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역아(易牙/ 이아라고 읽는 책도 있음)가 졸이고, 볶고, 지지고, 구워서 갖가지 맛을 조리하여 바치니 환공이 그것을 먹고 배가 불러 아침이 되도록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면서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좋은 맛을 탐(貪)하다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진문공(晉文公)이 미인 남지위(南之威)를 얻고서 3일을 조정(朝廷)의 업무를 보지 않아, 남지위(南之威)를 멀리 쫓으며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미색(美色)을 탐하다 나라를 망치게 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초(楚)나라 왕(王)이 강대(强大)에 올라 붕산(崩山)을 바라보니 좌측에는 강(江)이요 우측에는 호수(湖水)라 좌우로 관망하여 배회(徘徊)하니 그 즐거움에 아예 죽음을 잊어버릴 정도라 마침내 강대(强臺)에 오르지 않고 맹세하며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고대(高臺)와 호수(湖水)를 탐(貪)하다가 나라를 망치게 할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군주께서 드신 술잔은 의적(儀狄) 것과 같이 좋은 술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주군께서 잡수시는 요리의 맛은 역아(易牙)가 정성껏 조리한 듯 맛이 있으며, 왼쪽에 있는 백대(白台)와 오른쪽에는 여수(閭須)의 두 궁녀는 마치 남지위(南之威)와 같이 아름답습니다. 또한 앞쪽으로 협림(夾林)을 끼고 뒤로는 난대(蘭臺)의 망대가 있는 것이 강대(强臺)에서의 즐거움과 같습니다.”라고 하면서

“여기에 하나만 있어도 족히 그 나라를 망칠 수 있다 하였는데 오늘 주군께서는 이 네 가지를 모두 갖추고 계시니 가히 경계(警戒)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를 묵묵히 듣고 있던 양혜왕은 노공공(魯共公)의 말에 감동하며 끊이지 않고 칭찬을 계속하였다.

여기서 올바른 한 사람(魯共公)이 용감하게 사치와 오만으로 일관한 왕에게 나라 망치는 행위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곧 술, 음식, 미색, 경관이다.

이 네 가지 경우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성(本性)이다. 그 본성이 도(度)를 넘으면 욕심(慾心)이 되어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인간이 타고난 욕심을 어떻게 없이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욕심의 정도(程度)가 지나쳐 경계(境界)의 선(線)을 넘어서면 문제가 되고 결국엔 탈이 나는 것이다.

간언(諫言/ 임금이나 웃어른에게 하는 충고)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어떤 경우라도 당당해야 가능하다.

간언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가장 위험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폭군에게 간언을 드렸던 충신들은 거의 살아남지 못하고 처참한 극형으로 최후를 맞았고, 심지어는 죄 없는 가족까지 몰살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 속이 넓고 생각이 깊은 군주를 만나면 간언은 빛을 보지만 대개는 자신은 물론 자신의 친족(親族)까지 해(害)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옛날의 지도자들은 욕심의 도를 넘지 못하게 간언(諫言)하는 벼슬을 만들어 임금이 욕심으로 인하여 나라 망치는 행위를 경계하였다. 이른바 간언대부(諫言大夫)이다.

요즈음 지도자들은 어떠한가? 끝없는 권력(權力)과 명예(名譽)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다. 그리고 그 지도자의 그릇된 생각과 행동을 지적해 시정해야 할 간언대부(諫言大夫)가 과연 있는가? 불행히도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측근에서 그 도를 넘는 언행에 아첨(阿諂)과 아부(阿附)로 더욱 부채질하여 곤란한 경우로 빠져들게 하고 있다.

문제는 위정자들의 도덕성(道德性)과 양심(良心)이 문제이지 간언이 중요하겠는가?

우리는 중국의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을 성군(聖君)이라고 칭한다. 그분들은 자신이 왕의 지위에 있을 때에도 검소(儉素)하고 욕심을 거두었다. 거기다가 심지어 왕의 자리를 (백성의 편안한 삶을 위하여)자기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덕망(德望) 있고 유능(有能)한 사람에게 물려주는 정도(正道)를 감행한다.

동양 철인 맹자(孟子)는 “마음을 수양하는 데 욕심을 적게 가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 사람이 욕심이 적으면 비록 보존되지 못함이 있더라도 (보존되지 못한 것이)적을 것이요 사람이 욕심이 많으면 비록 보존됨이 있더라고(보존된 것이)적을 것이다.

(孟子曰 養心 莫善於寡欲 其爲人也寡欲 雖有不存焉者 寡矣 其爲人也多欲 雖有存焉者 寡矣(맹자왈 양심 막선어과욕, 기위인야과욕 수유부존언자 과의 기위인야다욕 수유존언자 과의)

마음을 비우자 그리고 편안하고 행복하고 여유롭게 살자... 위정자가 잘못되면 국민들 모두가 노공공(魯共公)같은 간언으로 위정자를 심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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