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서갱유(焚書坑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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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焚書坑儒)’
  •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3.05.2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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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인문학 교수

제 22편: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우리가 겪는 ‘가짜뉴스’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파묻음’이라는 뜻으로, 기원전 213년과 기원전 212년에 일어난 별개의 두 사건을 하나로 합쳐서 일컫는 용어(用語)이다.

이는 실용서(實用書/ 의약, 점술, 농업)를 제외한 사상서(思想書)를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탄압책으로 중국에서는 분갱(焚坑)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우리에게 진시황(秦始皇)은 잔인한 폭군(暴君)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 중국인들의 시각으로 진시황은 큰 업적과 번영의 틀을 마련한 위대한 황제로 재평가되고 있기도 하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봉건제(封建制)를 군현제(郡縣制)로 바꾸어 제후(諸侯/왕)들의 임명을 황제가 직접 하므로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임명하고, 중국 내의 분열과 전쟁을 종식시키고, 혼란한 사회의 질서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문자(文字)와 도량형(度量衡)의 기준이 달라 서로 소통(疏通)과 이해(理解)가 엇갈리는 상태를 모든 국민이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통일(統一)하여 일관된 경제 질서를 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직도(直道), 운하(運河)의 건설로 교역방법을 혁신하여 경제발전은 물론 만리장성이나 진시황릉 등 지금까지 불가사의(不可思議)로 남아있는 토목공사는 건축학의 발전은 물론 후손들에게 관광자원까지 물려주어 후손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고 있다. 그야말로 진정한 통일(統一)을 이룬 것이다.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폭군으로 불러지는 이유가 분서갱유(焚書坑儒)사건이다.

그 사건을 요약(要約) 해 본다.

진시황(秦始皇)은 즉위 34년에 함양궁(咸陽宮)에서 천하통일 노고를 위한 잔치를 베풀었다. 여기에 박사(博士)들 70명이 앞으로 나와서 장수(長壽)를 빌었다 복야(僕射)인 주청신(周靑臣)이 앞으로 나아가 황제의 위덕(威德)을 칭찬하여 “폐하께서 천하를 통일하시고, 제후들의 땅으로써 군(郡)과 현(縣)으로 하셨기 때문에, 백성들은 다 즐거움에 편안하고, 전쟁의 걱정이 없으며, 그 덕을 만세(萬世)에 전하게 되었나이다.”라고 말했다. 진시황은 기분이 좋았다.

이어 순우월(淳宇越)이 국방과 국내 반란의 위험은 항상 존재하며 이는 역사서(歷史書)나 선비(학자)들이 옛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비판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니 이들의 세력을 경계(警戒)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승상인 이사(李斯)가 말을 이었다.

-전략-

“백성들은 집에서 농사에 힘쓰고 선비들은 법령을 배워 금(禁)하는 법령에 저촉되지 않도록 힘쓰고 있다. 그런데 여러 학자들은 지금을 스승으로 삼지 않고 옛날을 배워, 이로써 현대의 정치를 비방하여 백성들을 당황시키고 있다.

옛날에는 천하가 혼란해져도 능히 이를 통일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 중 략 -

이와 같은 일을 금하지 않는다면 위로는 임금의 권위와 세력을 저하시키고 아래로는 무리들이 세력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금하는 일이야말로 몹시 중요하다“

그러면서 승상 이사(李斯)는 이를 구체적으로 열거하여 진시황께 청하기를

“신이 청컨대 사관(史官)은 진(秦)나라 기록이 아닌 것은 다 불사르고, 박사의 벼슬이 직무상 취급하는 것 이외에 천하에서 감히 시경(詩經)과 서경(書經)과 백가(百家)의 책을 간직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모두들 군의 수위에게 제출하여 그 모두를 불사를 것, 감히 시서(詩書/시경과 서경)를 말하는 자가 있으면 시서를 저자(시장)에 버릴 것.

옛것으로써 지금을 그르다 하는 자는 집안을 모두 사형에 처할 것.

관리로서 이상에서 말한 금지사항을 침범하는 자를 알면서 검거하지 않는 자도 죄는 같다.

명령이 내려지고 30일 이내에 불사르지 않는 자는 이마에 문신을 새기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성을 쌓는 형벌에 처한다.

단, 버리지 않는 것은 의약(醫藥)과 점서(占書)과 농업(農業)의 책이다.

만일 법령을 배우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관리로써 스승으로 삼는다.”

진시황이 이 건의를 채택하여 사상서(思想書)를 불태운 사건을 분서(焚書)라고 한다.

한편 갱유(坑儒)는 다음 해인 35년의 일이다.

진시황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원하여 신선(神仙)의 재주를 익힌 방사(方士/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를 총애했다. 그 무렵 특히 눈을 끌어 대우한 사람은 후생(後生)과 노생(虜生)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받을 것을 받아버리자 진시황의 부덕(不德)을 마구 말하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불로장생의 허황된 욕심 때문에 한중(韓衆)이나 서불(徐芾)과 같은 방사(方士)에게 큰돈을 사기당한 진시황은 이번에 다시 노생 등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데 격노했다.

때마침 함양의 시중에 내보낸 첩자로부터 괴상한 언행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학자들이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화가 난 진시황은 어사(御使)에게 명하여 학자들을 남김없이 심문하게 한 후 명하기를

"짐이 전에 쓸모없는 책들을 거두어 모두 불태우게 하고 문학에 종사하는 선비들과 방술사들을 모두 불러 모아 태평성세를 일으키고자 하고 방사들로 하여금 각지로 찾아다니며 선약(仙藥)을 구하게 하였거늘, 지금 들으니 한중(韓衆)은 한번 가더니 소식이 없다고 하고, 서불(徐芾)등은 막대한 금액을 낭비하고서도 결국 선약을 구하지 못한 채, 불법으로 이익을 챙기면서 서로 고발하고 있다는 소식만을 매일 듣고 있다.

짐이 노생 등을 존중하여 그들에게 많은 것을 하사했으나, 이제 나를 비방하면서, 나의 부덕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내가 사람을 시켜서 함양에 있는 이런 자들을 조사해 보니, 어떤 자는 요망스러운 말로써, 백성들을 혼란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어사를 시켜 이런 자들을 조사하자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고발해서, 진시황제가 법령으로 금지한 것을 범한 자 460여 명을 사형 죄로 판결하여 모두 함양에 생매장하고 천하에 그것을 알려서 후세 사람들을 경계시켰다.(於是使御史悉案問諸生,諸生傳相告引,乃自除犯禁者四百六十餘人,皆坑之咸阳,使天下知之,以懲後) <사기>6.<진시황본기>

‘가짜 뉴스’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민 뉴스(인터넷 사전)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국민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가장 큰 병폐는 ‘가짜 뉴스다“ 이 가짜 뉴스는 불법을 자행하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없는 일이나 작은 일을 지나치게 과장시켜 자신의 입지를 크게 확장시키려는 사기(詐欺)적인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나 국민 모두에게 득(得)이 될 까닭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사람들이 모두 많이 배운 자들이고 고위직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소위 진시황 시절에 학자(선비)에 속하는 엘리트들이다. 그러면서 주장하는 근원은 우리가 이미 배격하고 있는 낡은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교묘한 속임수나 그럴듯한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 누가 이 가짜뉴스를 믿을 것이며, 또 그 당당하고 뻔뻔함에 경악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

이렇게 나아가서는 안 된다. 국민들도 ‘가짜 뉴스’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고, 모두들 정신 가다듬고 국익(國益)을 위한 정도(正道)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서는 남녀(男女), 노소(老少), 지(知)나 무지(無知)를 떠나 모두가 하나 되어 이적행위(利敵行爲)를 척결해야 하고, 정부와 책임 있는 리더들은 선공후사(先公後私)에 모범을 보이고 강력히 실천해야 한다.

나라가 안정되고 국제적 경쟁에 이기려면 ‘가짜 뉴스’에 대한 현대판 ‘분서갱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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