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내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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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내 아우
  • 김용복/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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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칼럼리스트[사진=광장21]
김용복/칼럼리스트[사진=광장21]

 

2년 전 새벽마다 만났던 내 아우 경비원

지금은 경비 일을 하지 않고 농장에서 채소를 가꾸며 살아간다 합니다. 내 아우가 떠나면서 1년간 겪었던 말을 하더군요. 함께 들어 보실까요?

『동 대표라는 분이 불법주차를 하더라구요. 경비원은 투명 인간이 돼야지 말을 하면 안 돼요.
삿대질을 하는 입주민도 있고, 아들뻘 되는 젊은이가 턱으로, 심지어는 발로 지시를 하더라구요.
다양한 형태의 갑질을 겪으면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그걸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한 경우도 있다잖아요.

엉뚱한 일을 시키는 입주민도 있었어요. 순찰을 도는데 한 입주민이 옷장을 옮겨달라고 하더라구요. 무거운 옷장이었어요. 그걸 하고 나와서 가는데 다시 불러요. 아무래도 원래 위치가 나을 것 같다고 원상 회복하라는 거에요.』

전직 사장 출신인 제 아우의 말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갑질하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높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고 따뜻해요.
 어느 추운 날 밤 열 시경이었어요. 내가 있는 초소의 창이 살며시 열리고 한 고등학생이 붕어빵이 담긴 봉지를 넣어 주었어요. 307동 앞에 있는 S마트 건너편 아주머니한테서 사 왔다는군요.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그리고 또 한번은 밤늦게까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입주민 아주머니가 포도 한 송이를 주더라구요. 보니까 비싼 고급 청포도였어요. 두 송이를 사 가는데 그중 한 송이를 저에게 주는 거예요. 그 마음이 고맙더라구요.
 경비원 하니까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친구들 중에는 건강이 받쳐주지 않아 일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저는 아직 일을 할 기회가 있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내 아우의 말을 들으며 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갑질 행세는 안 했는지. 그들은 모두 무역회사 대표도 했고, 전직 경찰관 직에도 있었으며 어느 큰 회사를 경영도 했던 분들입니다.

나는 사장 출신의 내 아우 경비원의 말을 계속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경비원 일을 해보니까 전에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구요. 환경미화원, 대리기사 등 경제적 약자들이 이 사회의 밑바닥에 강물같이 깔려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내가 사장이고 아파트 입주민으로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죠.』

다음은 제 지인께서 보내온 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들어보시지요.

『아버지는 삼십 년 넘게 회사를 다니다 퇴직했다.
그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평생 기계같이 회사로 가셨는데 안 가시니까 이상하다고 했다. 그 생활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 같다.
그 얼마 후 아버지는 내게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하셨다.
그게 안 되면 길거리에서 만두를 만들어 팔아 보겠다고 하셨다.』

이처럼 정년퇴직은 인생의 경사진 언덕 아래로 굴러내리는 것이었다. 그게 우리 사회 소시민들이 가야 하는 내리막길이었다. 그다음엔 아파서 요양병원에 있고 그리고 죽는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1,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연구직에 있던 동창이 있다. 그는 연구소를 퇴직한 후 교회의 경비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는 어느 날 주차금지 지역에 차를 댄 장로에게 원칙을 지키라고 했다. 평생 법과 원칙을 공부하던 버릇이 남아 장로의 특권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목이 잘렸다.』

2, 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친구가 있다. 그는 주민센터에서 주는 노인 일자리를 신청해서 갔다. 거의 여성들이었다. 그는 팀장이라는 여성이 어떻게나 갑질을 하는지 그 마음을 풀려고 별 짓을 다했다고 했다. 그 팀장이라는 여성의 마음이 풀리고 나서야 일당 오만 원을 벌 수 있었다고 했다.』

저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2년 6개월 전 제 아내를 잃고 늘 우울해할 때 307동 옆에 있는 ‘우마장’이나, 105동 뒤에 있는 ‘한마음 동산’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앉아 있노라면 빵도 주고, 용돈에 보태 쓰라고 2~3천 원씩 손에 쥐어주고 가는 아주머니가 계십니다.

처량하고 가엽게 보였던 것입니다. 달려가 저 좀 의지하게 해달라고 매달려 사정하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 된 것 같습니다. 그 후로는 그분들을 뵐 수가 없었으니까요.

공자님께서는 “인자는 자기가 서고자 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와 함께 일어서는 사람이다. 또 자기 일을 잘하고자 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와 함께 잘하게 하는 사람이다.”라고 ‘논어 옹야’편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파트 형제자매들은 공자님 말씀처럼 우리 아파트를 지켜주는 경비원 형제들이나, 저처럼 혼자 사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주시면 어떨까요?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더군요. 그래서 저는 307동 곁에 있는 육각정에 앉아서 홀로 사는 아우들을 불러냈지요.

그리고 물었어요.

혼자 살면서 꿋꿋한 모습을 보이는 힘이 어디서 나느냐고.

빙그레 웃고 말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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