捕蛇者說(포사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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捕蛇者說(포사자설)
  • 장상현 전 인문학교수
  • 승인 2023.07.0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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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전 인문학 교수

제 25편: 捕蛇者說(포사자설) : 어느 뱀 잡는 사람(땅꾼)의 이야기에 담아있는 교훈

이 글은 ⟨하동선생집(河東先生集)⟩에서 가려낸 글로서 유종원(柳宗元)이 영주(永州)에 내려왔을 때 부역(賦役)과 세금(稅金)이 혹독(酷毒)하나, 백성들이 그 명(命)을 거역할 수 없는 권세 우선의 대혼란의 시절 이야기다.

당시 영주(永州)에 있는 어느 마을이 뱀을 잡아 부세(賦稅/부역과 세금)를 충당하고 있었는데 유종원이 이를 빌어 의론(議論)을 발표한 것이다.

본문의 주지(主旨)는 뱀 잡는 이가 뱀에게 물려죽는 위험은 있을지언정 부역(賦役)은 원치 않는다는 내용을 빌어서 부렴(賦斂/부역과 가혹한 세금)의 해독(害毒)이 독사(毒蛇)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영주(永州)의 들(野)에 기이한 뱀이 나오는데 몸은 검정 바탕에 흰 무늬가 있었다.

그 뱀에 초목이 닿으면 초목이 모두 말라죽으며 사람이 물리면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잡아 말려 환(丸)으로 만들어 먹으면 문둥병(癩病)이나 악성종기(惡性腫氣), 악창(惡瘡)을 치유할 수 있고, 죽은 살을 들어내어 새 살이 돋게 하고, 뱃속에 있는 삼충(三蟲)을 죽일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궁중의 어의(御醫)만이 왕명(王命)으로써 그 뱀을 사들였는데 해마다 두 차례에 걸쳐 거두었다. 그 뱀을 잡을 수 있는 자들을 모아 그가 내야하는 조세(租稅)로 쳐주니 영주(永州)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뱀을 잡으려고 나섰다.

장씨(蔣氏) 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그 업(業)에 종사한 지가 삼대(三代)째였다.

그에게 물은즉 대답하기를

“나의 할아버지는 이 일로 돌아가셨고, 부친 또한 이 일로 돌아가셨고, 오늘날 내가 이 업(業)을 계승한 지가 12년이나 되었는데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매우 비통(悲痛)해 보였다. 나는 그를 매우 가련(可憐)히 여기며 말하길

“그대는 이 일을 고통(苦痛)스럽게 여기는가? 내가 담당자에게 이야기하여 당신이 하는 일을 바꾸어 당신의 세금을 회복시키면 어떻겠는가?”라고 하였더니 장씨(蔣氏)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슬퍼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하기를

“당신은 나를 불쌍히 여겨 나로 하여금 다른 일거리로 살아가게 하려 하십니까? 나는 이 뱀을 잡는 일의 불행이 부세(賦稅)가 회복되는 불행만큼 그렇게 불행하지 않습니다. 지난날 내가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미 오래전에 더욱더 고생을 하였을 것입니다. 나는 3대에 걸쳐 이 고장에서 살아서 지금 6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이웃 사람들의 생활은 날로 궁핍(窮乏)하여 그들의 땅에서 나는 소출(所出)과 그 집의 수입을 모두 다 갖다 바치고, 울부짖으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으나 결국에는 굶주림에 넘어지고 쓰러졌으며, 비바람에 부대끼고 추위와 더위에 시달려 독한 병에 신음하다 죽는 자가 즐비하게 깔리었습니다.

지난날 나의 조부와 함께 여기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은 열 가구 중 한 가구도 없고, 나의 부친과 함께 여기 살았던 사람은 열 가구 중 네 다섯 가구도 없습니다. 모두 죽지 않았으면 이사를 갔는데 나만 이 뱀 잡는 것을 업(業)으로 하였기에 혼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포악(暴惡)한 관리들이 내 고향에 와서 동서(東西)로 큰소리를 질러대고, 남북(南北)으로 마구 부딪쳐 소란을 피우는데 그 왁자지껄함과 놀라움에 비록 닭이나 개나 하더라도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조심조심 일어나 장독 속을 살펴 나의 뱀이 그대로 있으면 안심하고 누우며, 정성껏 뱀을 사육하여 때에 맞추어 헌납하고, 물러나와 내 땅의 소출(所出)을 평안하게 먹는 것으로 내 생애를 다할까 합니다.

대개 일 년에 죽을 고비를 두 번만 넘기면, 그 나머지는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으니 어찌 이웃 사람들이 날마다 고통 속에 사는 것과 비길 수 있겠습니까?

오늘 비록 뱀에 물려 죽을지라도 이웃 사람들의 죽음에 비긴다면 이미 오래 살았으니 감히 또 무슨 원한을 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더욱 슬퍼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라고 하였으니 나는 전에는 이 말씀에 의심을 품었으나 오늘날 장씨(蔣氏)의 경우를 통해보니 가히 믿을 만 한 것이다.

“슬프도다! 누가 세금을 부과(賦課)하고 거두는 해독(害毒)이 이 뱀의 해독(害毒)보다 더욱 심하다는 것을 알겠는가?”

이러한 연고로 이 이야기를 지으니 무릇 민정(民情)을 살피는 관리들이 참고하여 보기를 바란다.》

 유종원의 자(字)는 자후(子厚)로 하동(河東)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사람이다. 그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열입(列入)되는 고문대가로 그의 산수유기(山水遊記)와 우언소품(寓言小品)은 쌍절(雙絶)이라 일컬어질 만하다.

그렇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던 공무집행의 관리들이 백성들의 소득을 공정하게 징수하지 않고, 정상치 보다 수배에서 수십 배로 세금을 빼앗아 간다면 그 나라는 망할 처지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과도한 세금 징수가 원인이 되어 동학란(東學亂)을 겪었고, 동학란의 평정을 위해 외국 군대의 힘을 빌린 것이 화근이 되어 일제 36년의 망국의 길을 걸었다.

이에 백성들은 주권을 유린(蹂躪)당한 채 나라를 잃고 속국(屬國)의 치욕을 역사에 남기고 큰 교훈으로 삼고 있다.

역사는 항상 경고한다. 그리고 교훈을 그 후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 역사와 교훈을 외면한 채 오늘도 법도를 벗어나 권력과 재물에 현혹되어 국민을 얕잡아 보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참담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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