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지지(老馬之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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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지지(老馬之智)
  • 장상현 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3.08.07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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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전 인문학교수
장상현 전 인문학교수

제 27편 : 늙은 말(馬) 한 마리와 노신(老臣)의 지혜와 경륜(徑輪)이 많은 군사들을 살렸다.

그리스 격언에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삶의 경륜(徑輪)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물론 노인이 되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고집스러워지며, 자신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그 대신 기억력(記憶力)을 빼앗는 자리에 통찰력(洞察力)이 자리를 잡게 된다. 따라서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잘 활용하면 가정(家庭)과 사회(社會) 나아가 국가(國家)까지도 발전할 수 있다.

고사성어에 노마지지(老馬之智)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노마지지(老馬之智)’라 함은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이다. 즉 ‘경험이 풍부하고 숙달된 지혜’라는 의미가 되며. 또한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나름대로의 경험과 지혜가 있음’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노마지지(老馬之智)는 한비자(韓非子)의 설림편(說林篇)에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제(齊)나라의 명재상인 관중(管仲)과 습붕(濕朋) 두 사람은 환공(桓公)을 따라 고죽국(孤竹國)이라는 작은 나라를 정벌했다. 그런데 갈 때는 봄이었는데, 돌아올 때는 겨울이 되어, 춥고 눈이 많이 내려 산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이때 관중이 “늙은 말은 원래 지나온 길을 알고 있으므로, 늙은 말의 지혜가 도움이 된다.(老馬之智可用也:노마지지가용야)”라고 말하고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갔다. 과연 그 늙은 말은 잠시 헤매다 본래의 길을 찾아 많은 군사들이 추위의 사선(死線)에서 무사히 귀국(歸國)할 수 있었다.

또 산중(山中)을 진군하고 있을 때, 물이 떨어져 병사들의 목이 말랐다.

그러자 습봉(濕朋)이 “개미는 겨울이면 산 남쪽에서 살고, 여름철이면 산 북쪽에 사는 법이다, 개미집의 높이가 한 자라면 그 지하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개미집을 찾아 그 아래를 팠더니 과연 물을 구할 수가 있었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관중과 같은 현명한 사람이나 습봉과 같은 지혜 있는 사람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늙은 말이나 개미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현의 지혜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니 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대체적으로 연륜이 쌓여갈수록 경험이 풍부하게 된다. 경험이 풍부해지면 그에 비례하여 삶의 지혜도 많아지게 진다. 노인의 팔다리가 쑤시면 다음날 일기를 점칠 수가 있고. 제비가 낮게 날거나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저녁노을의 빛깔이 짙어도 다음날 일기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경험에서 얻은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이 많으면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것은 남녀를 불문한다.

노마지지에서 늙은 말이 산길을 제대로 찾은 것은, 말의 본능(本能)과 많이 다녀 본 경험(經驗)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 경험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나이가 지긋하여 인생의 쓴맛과 단 맛을 다 본 사람만이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가 있다. 자식을 낳아서 키워 본 사람만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사랑을 알 수 있는 법이다.

한 분야에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그 분야의 ‘전문가(專門家)’라고 한다. 

국가를 관리하거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은 스스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가 있다. 전문가에게 일을 맡겼으면 그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곧 늙은 말을 풀어놓았으면 그 말이 찾아가는 산길을 믿고 따라가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하여, 경로사상(敬老思想)이 두드러진 나라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경로사상이 약해져 가는 것 같다. 심지어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이 “노인들은 투표장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인생 경험이 많아야 생활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아침 해가 찬란하고 장엄하지만,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서 지는 석양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그래서 옛 시인은 “서리 맞은 단풍잎이 봄꽃보다 붉다”라고 읊었다. 이를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라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심심찮게 ‘노인폄하(老人貶下)의 말을 하여 세상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자기는 부모도 없고 집안의 어른들도 없는 사람들인가? 설령 없다 해도 이렇게 세상의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정치라고 하니 국가가 제대로 가겠는가?

제 못난 것은 감추고 남 탓만 하는 사람답지 못한 자들이 늘 자기모순에 빠져 눈앞의 이익에만 전전긍긍하여 자신은 물론 나라까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말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가 일이 커지면 사죄하고 무릎을 꿇고 하는 비굴한 모습이 이제는 역겹다 못해 무한한 분노를 자아낸다.

나이 많고 경험이 풍부한 사물에 그 지혜를 빌리면 좀 더 안전하고 제대로 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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