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즉시색(空卽是色)을 발현한 김한겸 화백의 창조적 예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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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즉시색(空卽是色)을 발현한 김한겸 화백의 창조적 예술세계 
  • 장주영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 승인 2023.09.0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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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영 교사[사진=광장21]
장주영 교사[사진=광장21]

 

공즉시색(空卽是色) : 작가의 시선이 예술로 거듭니다.

흐린 기억 속 편린으로 묻힐 수도 있는 공간들을, 감각의 에너지로 응축하여 붓으로 발산한 신경외과 의사가 있다.

바로 ‘김한겸 화백’이다. 변화무쌍한 자연은 주관적 색(色)으로 재창조돼, 프레임 안에서 가치를 부여받고 형상화됐다.

작가는 현실 속 실체들이 보여주는 통념의 색(色) 대신, 그 순간 채워진 빛의 양과 방향에 의해 다르게 느껴지는 감각의 색깔들로 시각화했다. 그는 계절과 시간을 묻힌 요술 붓을 휘두르며 창조적 색(色)을 무한히 뿜어냈다.

이제 그곳은 무의미한 공간에서 작가의 감정을 기록한 특별한 장소로 변했고, 그림으로 의식화되고 존재의 이유가 됐다. 그곳의 느낌과 분위기를 작가만의 고유의 색(色)으로 발현함으로써, 예술적 풍경으로 승화한 것이다. 

가을바이브  (45.5×33.4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가을바이브  (45.5×33.4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그림 그리는 의사

김한겸 의사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환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병원을 떠나, 여행자가 되어 세상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먼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가슴이 탁 트이는 일이었다.

벽시계가 붙은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니 자연의 시계가 보였다. 하루가 나날이 다르고 하루도 시간에 의해 그림자의 길이와 위치가 달랐다.

인간의 삶은 유한했지만, 여행자는 거대하게 순환하는 자연과 하나가 된 듯 했다. 그는 생사고락(生死苦樂)과 삶의 소중함을 느끼는 의사이자 수행자였다.

진료가 끝나면 전문용어로 채워진 의료기록과 주사기를 손에서 내려놓고, 생(生)의 추억을 발산하는 화가로 변신했다.

여행하며 느꼈던 순간의 설렘과 감동을 소환하기 위해 물감을 섞었다. 자연스럽게 묘사된 공간 속에는 작가의 낭만과 기억이 숨어있고, 완성된 풍경은 작가의 사랑을 무한히 받으며 태어난 창조물이 되었다.

풍경은 직설적인 묘사에 가까워보여도 자세히들여다보면 감성이 더해졌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하고 추상적이면서도 의사라는 직업적 성격상 곳곳마다 디테일이 살아있다. 좌뇌와 우뇌를 활짝 연 김한겸 의사는 거침없이 조색했고, 묘사는 시적(詩的)이면서 신비롭기까지 했다. 

부다페스트의 야경  (45.5×27.3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부다페스트의 야경  (45.5×27.3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그림이 주는 치유

인생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던가? 가까이서 아픔을 들여다보던 의사는 바깥세상을 보며 마음을 정화(淨化)했다.

행복을 주었던 마을, 자연, 도시를 고요한 마음으로 되새김질해 작품으로 남기는 과정도 정화(淨化)의 연장이었다.

풍경 안에는 숙연함, 여유 그리고 쉼이 들어있다. 작품 속 풍경은 거의 정오를 지난 시간대이다.

휴식을 위한 오후이거나, 노을이 아름다운 해질녁 아니면 불빛이 반짝이는 밤인 것이다.

그림 감상에 피로가 전혀 없다. 작가는 서정적인 원경(遠景)속에서 일부러 게으름도 부리며 휴식과 편안함으로 행복을 느낀 듯하다.

여행의 추억을 작품으로 완성해 가는 관조적 여정은, 그에게 두 번째 여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여행의 행복한 순간은 빨리 지나갔지만, 작가는 그 순간을 부여잡고 음미하면서, 떠나가지 못하도록 예술 속에 긴 시간 달궈낸 것이다.

의사가 처방전을 쓰듯, 마음을 치료하는 풍경을 캔버스에 남겼다. 필자는 작품을 대하는 내내 행복한 느낌과 부드러운 분위기로 치유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림을 보면서 아픔 대신 편안함이 느껴지니, 김한겸은 붓으로도 병을 낫기는 천상 의사다. 

이쯤에서 작품을 어디 한번 보자.

발리톤 호수의 노을(헝가리)  (53×40.9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발리톤 호수의 노을(헝가리)  (53×40.9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발라톤 호수의 노을(헝가리)❱

해가 서산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이다. 작가는 이 순간이 눈부신 찰라 임을 알아차렸다.

황금빛부터 레몬 빛까지 다양한 노란색의 찬란함으로 마지막 에너지를 뿜으며 여운을 준다. 석양의 강렬함 때문에 동공은 마비되었고, 호수는 제 빛을 잃고 함께 물들어 버렸다.

보랏빛 우유 구름과 연두색, 파랑, 남색, 검푸른 호수의 묘사가 미치도록 황홀하다.

나무 갑판 위의 낚싯대가 간격을 이루며 원근을 표현하고, 갑판의 소실점(小失點)이 절정의 석양에 있으면서, 동시에 호수 건너의 마을은 검정 실루엣만 남기면서 좌측으로 점점 작아져서 수평감을 극대화시키며 깊고 평온하다.

태양의 열정을 지녔으되, 한발 물러난 듯 관조적이면서 침묵에 쌓인 차디찬 남성적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노을바다  (45.5×33.4cm,  oil on canvas, 2023)[사진=징주영]
노을바다  (45.5×33.4cm,  oil on canvas, 2023)[사진=징주영]

❰노을바다❱

노을로 물들어버린 붉은 구름과 뽀글뽀글 솜털 흰 구름. 구름의 그림자로 뒤덮여 그늘진 바다의 보랏빛과 반짝이는 윤슬의 색이 인상적이다. 하늘 위로 자유로이 나는 갈매기의 활짝 펼친 긴 날개와 바다 위에서 무거운 노를 힘겹게 젖는 작은 배위의 남자가 서로 대비를 이룬다. 이 두 검은 존재가 이 작품의 방점이다.

뉴욕 허드슨강의 추억  (53×33.4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뉴욕 허드슨강의 추억  (53×33.4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뉴욕 허드슨강의 추억❱

허드슨강을 밀어내는 배가 만든 포말은 활력을 주고 푸르다. 맑은 창공에 넓게 드리운 구름이 오후의 뜨거움을 막아준다. 떠나가는 배는 복잡한 뉴욕과 멀어지며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마치 광각 렌즈에 찍힌 모습인 듯, 네 모서리가 어둡고, 웅장한 뉴욕 도시가 구름보다 작고, 멀게 묘사됐다. 미련없이 훌훌 털고 자유를 향해 떠나는 듯 하다.

머물다ⅠⅡⅢ  (182.6×42.4cm,  oil on canvas, 2021)[사진=장주영]
머물다ⅠⅡⅢ  (182.6×42.4cm,  oil on canvas, 2021)[사진=장주영]

❰머물다ⅠⅡⅢ, 2021❱

눈과 바위로 뒤덮인 히말라야 산을 묘사했다. 험준한 자연 앞에 궂은 날씨까지 더해져 웅장함에 이어 숙연함마저 느껴지는 이유는 이 산을 정복하려는 누군가 때문이리라.

작가 또한 이곳에 머물며 느낀 감정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험준한 히말라야의 눈 덮인 갈색 산에서 공포를 극복하고 남자의 대범함, 참을성, 용기를 키우는 담력 훈련이 됐을 것이다. 거친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이겨내며 살아갈 힘 말이다.

작가는 사람이 사는 공간들을 원근을 계산하여 작품에 반영해 전혀 어색함 없이 몰입하게 한다. 또 광각 렌즈로 찍은 듯한 풍경을 묘사함으로써, 자연의 장엄함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김 화백의 특기인 삼차원적 입체감은 이차원적 평면이라는 물리적 한계 속에서도 사실감을 극대화한다. 필자도 작가의 눈과 하나가 되어 그곳에 순간이동한 듯 영락없이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유화인데도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불투명한 채색이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맑음이 들어있고 촉촉한 물을 머금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화장을 옅게 한 투명한 피부의 여인처럼 둔탁하지 않다. 색의 선택에 있어, 가시광선을 무지갯빛으로 퍼트려 분석할 수 있는 스펙트럼처럼 선명하고 이과적(理科的)인 작가의 성향이 나타난다.

작가의 예술세계에 표현되는 황홀한 빛깔은 빛의 파동과 자연이 백년가약을 맺은 연인처럼 잘 어울리고 사랑스럽다. 

​도시의 풍경, 시골 마을, 거리, 하늘, 산, 강, 호수, 바다, 나무, 구름... 우리 곁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것들을 유의미하게 관찰하고 예술적 기록을 남긴 의사, 김한겸 화백.  작가의  창조적 결과물들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행복을 나누는 매개체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앞으로도 무궁한 발전과 변신을 기대하면서, 화백의 낭만적 의식과 인간적 숨결을 진하게 불어넣은 창의적 작품들이 쏟아져나오기를 기원해본다.

스파이더맨을 찾아라  (97×130.3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스파이더맨을 찾아라  (97×130.3cm,  oil on canvas, 2023)[사진=장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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