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忠), 효(孝), 예(禮), 의(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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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忠), 효(孝), 예(禮), 의(義)
  • 장상현 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3.09.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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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전 인문학 교수

제 30편 : 학교 교육에 충(忠), 효(孝), 예(禮), 의(義)교육의 부활(復活)을 바란다.

[스승(서산대사)님과 제자(弟子/사명당) 이야기]

 

요즈음 세상은 아무리 이해를 넓게 가지려고 해도 왠지 어지러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겠다.

정치판이 하도 시끄럽더니 이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교사(敎師)와 학생, 나아가 교사와 학부모 간의 어처구니없는 엇갈림의 전개가 또 다른 분노를 느끼게 한다.

지금의 교사는 옛날에 스승이나 선생과 같은 고귀한 존재이다. 감히 학생, 학부모(學父母)가 교사의 훈육(訓育)에 관련하여 시비(是非)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승의 어원은 조선시대 어린이용 한자 교학서인 『훈몽자회』에 불교의 중(僧)을 스승이라고 하고, 근세까지만 해도 중을 높여 부르는 말로 ‘스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는 불가(佛家)에서 스님은 곧 ‘사(師)님’이었고 스승은 ‘사승(師僧)’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은 일찍이 불교가 왕성했던 고려시대부터 쓰이던 말인데 중(僧)을 존경해서 부를 때 ‘사승(師僧)’이라고 썼는데 이것이 변한 것이다. 이 ‘사승(師僧)’이 변해서 ‘스승’이 되었고, ‘사(師)님’이 ‘스님’이 된 것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교사(敎師)라는 뜻이 아니라 삶의 지혜(智慧)까지도 가리키는 정신적(精神的)인 선생(先生)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선생(先生)’이라는 말은 본래 ‘일찍부터 도(道)를 깨달은 자,’ ‘덕업(德業)이 있는 자,’ ‘성현의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 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 ‘국왕(國王)이 자문할 수 있을 만큼 학식을 가진 자.’를 일컬었다. 따라서 선생은 덕과 학식을 갖춘 한 시대의 사표(師表)로 될 만한 인물의 존칭이다.(율곡, 퇴계, 김옥균, 김구, 김성수 등)
따라서 ‘스승과 제자’라는 말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관계인 동시에 서로를 배우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관계다. (요즈음은 상대방에 대한 존칭으로 많이 쓰인다)

스승은 부모 다음으로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 왔다.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는 매우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관계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아동보호법, 아동학대법, 교권보호 등 스승과 제자 사이에 학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이 문제를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현실이 어디 가르치고 배운다는 관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조선 14대 선조(宣祖) 때 사명당(四溟堂 /惟政.유정.1544~1610)이 오랫동안 금강산(金剛山)등에서 도(道)를 닦은 끝에 축지법(縮地法)까지 익히자 자만심이 발동했다.

'묘향산(妙香山)에 도술 높은 서산대사(西山大師 /休靜.휴정1520~1604)라는 큰 스님이 계시다는데 그와 도력(道力)을 한번 겨뤄 봐야겠다. 그래서 만약 나의 도력이 모자라면 그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를 더 닦아야지.' 사명당은 이제 막 익힌 축지법을 이용하여 몇 걸음 만에 묘향산 입구에 도착했다.

한편 서산대사는 사명당이 올 줄을 미리 알고 묘향산 골짜기의 물을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흐르게 해 놓았다. 사명당이 도착하여 이 광경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역시 도술이 뛰어난 스님이시군!" 이윽고 서산대사의 암자에 도착한 사명당은 새 한 마리를 잡아 가지고 손에 쥐고서 서산대사 앞에 가서 물었다.

"대사님, 제가 이 새를 죽이겠습니까? 살리겠습니까?" 그러자 서산대사는 사명당을 맞으려 대문을 나오려다 대문 문지방에 다리를 앞뒤로 걸치고 서서 되물었다.

"대사, 그럼 내가 지금 밖으로 나갈 것인지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 맞혀 보시오. 그러면 나도 맞히리다."
사명당은 "그거야 나오시든지 들어가시든지 대사님의 마음에 달린 것 아니겠습니까? 허나 대사님은 저를 맞으러 나오시는 길이니까 아마 나오시리라 생각합니다."
서산대사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신 역시 손안의 새를 죽이든 살리든 당신 마음이 아니겠소. 그러나 대사가 살아있는 목숨을 죽이지는 않을 것으로 아오."

사명당은 "맞습니다. 불자(佛子)가 귀한 생명을 죽일 수는 없지요. 허허허."
사명당은 시원스럽게 웃고 나서 손안의 새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두 분 대사는 마루방에 마주 앉았다.

사명당은 냉수 한 그릇을 청한 뒤 가지고 온 바늘 백 쌈을 그 물에 쏟았다. 그러자 바늘이 곧 먹음직스런 국수로 변했다. 그리고 사명당은 그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그러자 서산대사는 "그 국수 맛이 참 좋을 것 같구려, 나도 출출하니……." 하면서 종자에게 냉수 한 사발과 바늘 백 쌈을 가져오도록 하고, 사명당과 똑같이 바늘을 국수로 만들어 후루룩 마셔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국수를 뱉으니 국수가 다시 바늘 백 쌈으로 변했다.

이를 보고 속으로 놀란 사명당은 2차전으로 준비해 온 달걀꾸러미에 달걀을 꺼내어 차례차례 괴어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서산대사가 "대사의 도력이 참으로 놀랍구려!" 하면서 서산대사도 달걀을 가져오도록 하더니 처음 한 개를 허공에 머물게 한 다음 그 아래쪽으로 연이어 받쳐 내려가면서 거꾸로 쌓는 것이었다.

분명히 서산대사의 재주가 더 뛰어났다. 더욱 놀란 사명당은 3차전으로 이번에야말로 하면서 오른손을 들자 하늘에 구름이 모여들어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서산대사는 "대사의 도력도 참으로 놀랍군요. 허허허……." 말을 마친 서산대사는 손을 들어 내리는 빗줄기를 거꾸로 하늘로 솟아오르게 했다. 땅에는 한 방울의 비도 떨어지지 않게 만든 것이다.

3차전마저도 사명당이 진 셈이다. "대사님, 제가 졌습니다. 이제부터 대사님의 제자가 되어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사명당은 큰절을 하고는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었다.

그 후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스승으로 공경하며 잘 모시고 나라의 위기(임진왜란)때  서산대사의 지휘 아래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우기까지 하였다.

스승이야말로 사회의 정신적 지주(支柱)로서 존경받고,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교권(敎權)을 법으로 세울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이 깨어있고, 인륜(人倫)과 도덕(道德)교육이 잘 이루어지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곧 전통의 우리 교육이념인 “충(忠), 효(孝), 예(禮), 의(義)교육이 어릴 때부터 잘 이루어지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인 것이다.

중심을 잃고 있는 교육현장에 하루빨리 교권(敎權)이 확립되고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새로워져 어둡고 혼탁한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하고, 스승을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풍속이 회복되어 이 나라의 올바른 교육현장이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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