絶纓之宴(절영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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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纓之宴(절영지연)
  • 장상현 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3.11.2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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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전 인문학 교수 

제34편: 絶纓之宴(절영지연) 갓 끈을 끊은 잔치 자리

사(私)적인 일보다 공(共)적인 일을 우선(優先)하는 참다운 도량(度量)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絶( 끊을 절)  纓(갓끈 영)  之(어조사 지)  宴(잔치 연)으로 구성되었다. [출처: 유향(劉向)의 설원(說葾) 복은(復恩)편,  열국지(列國志)]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해 주거나, 남을 어려운 일에서 구해주면 반드시 보답이 따른다는 보은(報恩)의 가치를 깨우쳐 준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나라 장왕(莊王) 때의 일이다.
초나라 장왕이 나라의 큰 사건(투월초의 반란)을 평정한 후 공(功)을 세운 신하들을 치하하기 위해 연회(宴會)를 열었다. 그리고 모든 신하와 후궁, 비빈들까지 초대했다.

이 잔치는 벼슬의 상하를 가리지 않고 모두 마음껏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잔치 이름을 태평연(太平宴)이라 했다. 잔치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도 계속되어 마침내 잔치자리는 흥이 절정에 달했다.

장왕은 그의 애첩 허희(許姬)에게 모든 대부(大夫)들께 골고루 술을 따라 오늘의 이 잔치를 더욱 빛내라고 일렀다.

허희가 일어나 한 대부에게 술을 따르자 모든 대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허희가 잔치 자리를 반쯤 돌았을 때였다. 갑자기 돌풍이 불어와 잔치 자리의 모든 촛불이 동시에 꺼져버렸다. 잔치 자리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때 누군지 알 수 없는 한 대부가 억센 팔로 허희의 허리를 슬며시 끌어안았다. 허희는 대부의 가슴을 밀어내면서 다른 손으로 그 대부의 관(冠)끈을 잡아끊었다. 그러자 그 대부는 허희의 허리를 놓아주었다.

이어 허희는 관 끈을 손에 쥐고 장왕에게로 와서 귀에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관 끈의 임자를 찾아내라고 하였다. 이에 초장왕은 “아직 불을 밝히지 마라. 과인이 오늘 잔치를 베푼 뜻은 경들과 함께 기뻐하기 위한 것이니 경들은 마음 놓고 마시기 위해 그 거추장스러운 관(冠)끈을 끊어버리고 마음껏 마시도록 하오. 만약 관(冠)끈을 끊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과인과 함께 즐기기를 거역하는 자로 간주할 것이오.”

모든 백관들은 일제히 관 끈을 끊었다. 그제야 장왕은 불을 밝히게 했다. 따라서 허희의 허리를 안았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잔치가 끝나고 장왕이 내궁으로 들자 허희가 아뢴다.

“첩이 듣건데 남녀는 함부로 범하지 못한다 하더이다. 더구나 임금과 신하의 사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오늘밤 대왕은 첩으로 하여금 모든 대신들에게 술을 따르게 해서 공경하는 뜻을 보이셨건만 무례하게 첩의 몸에 손을 댄 자가 있었습니다. 왕은 그 무례한 자를 잡아내려고 하지 않으시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장왕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자고로 임금과 신하가 한자리에서 술을 마실 때엔 서로 석잔(三杯)이상을 못 마시는 법이며, 그것도 낮에만 마시고 밤에는 못 마시게 되어있다. 그런데 과인은 오늘 모든 신하와 함께 취하도록 마셨고, 또 촛불을 밝히고서 까지 마셨다. 취하면 탈선하는 것은 인정(人情)이다. 만일 그 대부를 찾아내어 벌(罰)한다면 모든 신하의 흥취가 어찌 되었겠는가? 그렇게 되면 오늘 과인이 잔치를 차린 의의가 없지 않느냐?”

허희는 이 말을 듣고 장왕의 큰 도량(度量)에 탄복해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 왕의 여인을 희롱한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한 역모(逆謀)에 해당하는 큰 불경죄(大不敬罪)로 죄인은 물론 온 가문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수 있는 중죄(重罪)였다.
그런데 왕은 오히려 그 중대한 사안을 신하들의 마음을 달래는 치하(致賀)의 연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失手)로 넘긴 것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장왕은 놀랍게도 그 일이 자신의 경솔(輕率)함에서 빚어진 일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것은 장왕이 큰 뜻을 품고 원대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총애하는 후궁보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칠 신하를 더 소중히 여긴 큰 도량(度量)의 발로(發露)이기도 하며, 자신에 대한 자존감(自尊感)이 충만(充滿)한 사람임을 입증한 결과까지 인정되었다.

몇 해 뒤에 초(楚)나라는 진(晉)나라와 나라의 존망(存亡)이 달린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 전쟁에서 장왕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장웅(蔣雄)이라는 장수가 나서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초나라의 수호신이 되어 온몸이 붉은 피로 물들며 마치 지옥의 야차(夜叉)처럼 용맹하게 싸워서 장왕을 구하고 초나라는 결국 승리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은 그 장수를 불렀고 용상에서 내려와 그 손을 감싸 쥐고 공로를 치하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하게 싸운 연유를 물었다. 그 장수는 장왕의 손을 풀고 물러나 장왕에게 공손하게 큰절을 올리고 나서 말하기를, "몇 해 전에 있었던 연회 자리에서 술에 취해 죽을죄를 지은 소신을 폐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소신은 새롭게 얻은 제 목숨을 폐하를 위해서 바칠 각오를 했고, 마침내 전쟁터에서 그 각오를 실현코자 목숨을 바쳐 싸웠습니다.“

그 임금에 그 신하가 아닌가? 왕은 대의(大義)를 위하여 신하의 잘못을 덮고 관용으로 국가관리에 성공했고, 신하는 살려준 은혜에 보답하는 신하의 본분을 다했다.

채근담(菜根譚)에 “待人春風 持己秋霜[대인춘풍 지기추상/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따뜻하게) 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같이(엄격하게) 하라]”고 했다.

총선(總選)열기가 서서히 느껴진다. 관용(寬容)과 따뜻함이 넘치는 사회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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