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命有所不受(군명유소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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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命有所不受(군명유소불수)
  • 장상현 전 인문학교수
  • 승인 2023.12.1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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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전 인문학교수[사진=광장21]
장상현 전 인문학교수

 

제 36편 : 임금이 총애하는 신하를 처단하고, 군법(軍法)을 바르게 세우다

君命有所不受(군명유소불수) : (장수가 전쟁을 수행하는 마당에 있어서는)임금의 
                               명령도 경우에 따라 듣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글 자 : 君(임금 군) 命(명할 명) 有(있을 유) 所(바 소) 不(아니 불) 受(받을 수)
❍출 처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 
❍비 유 : 법규와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대장은 승리를 위해 왕의 명령도 사양한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때 이웃 진(晉)나라가 공격해오고, 인접한 연(燕)나라가 동시에 침범하였다. 이 전투에서 제나라가 패배하였으므로 경공(景公)은 근심하였다. 이때 재상인 안영(晏嬰)은 전양저(田穰苴)를 경공께 추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저는 전(田)씨의 첩(妾)의 몸에서 났으나, 문(文)은 뭇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고, 무(武)는 적을 놀라게 할 만한 인물입니다. 청컨데 임금께서 직접 시험해 보십시오.”

경공은 양저를 불러서 군사(軍事)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였는데 크게 마음에 들어 장군(將軍)으로 등용하였다. 이에 양저는 군사를 이끌고 연(燕). 진(晉)의 두 나라 침략군을 동시에 막기로 되었으니 양저는 임금인 경공에게 말하였다.

“신(臣)은 근본이 비천한 출신입니다. 임금께서 이런 저를 병졸들 중에서 뽑아내어 대부(大夫)의 위에 서게 하였으므로 아직 병졸들에게는 물론 서민들에게도 신임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인문(人文)에 무게가 없고 권위(權威)도 빈약합니다. 바라옵건데 임금께서 총애(寵愛)하시는 신하로써 백성에게도 존경받는 사람을 시켜 군사(軍事)를 감독(監督)하게 하여 주십시오”

경공은 이런 청을 허락하고 장가(莊賈)를 군사감독으로 임명하였다. 양저는 경공에게 인사를 드리고 장가와는 “내일 정오에 군영(軍營)에서 만나세.”하고 약속했다.

이튿날 양저는 먼저 군영(軍營)으로 달려가서 해시계를 세우고, 물시계를 걸어 놓은 다음 장가를 기다렸다.

한편 장가는 평소부터 교만하였는데 이 때도 장군(양저)이 군영에 있는데 감찰격인 자기는 그리 급하게 서두를 것이 없다고 생각해 친척과 친구들의 송별을 받으며 머물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오가 되어도 장가가 오지 않으므로 양저는 해시계를 엎어버리고, 물시계를 쏟아 치운 다음에 군영을 순시하고, 군사를 정돈하여 군령을 시달하였다. 

이런 일까지 다 끝나고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겨우 장가가 들어왔다. 양저가 물었다.
“어째서 제 시간에 늦었소?” 이에 장가가 대답하기를

“대부(大夫)와 친척들이 송별을 해 주어서 늦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양저가 말했다.

“장군(將軍)이란 자는 출진의 명령을 받은 그날부터 집을 잊어버리고, 군무에 종사하여 군령을 내면 육친을 잊어버리고, 채를 들어 군고(軍鼓/ 군중에 걸어놓은 북)를 치도록 급하면 몸을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지금 적이 깊이 침입하여 국내가 소란하고 사병들은 국경을 지키며 몸을 풍우(風雨)에 내던지고 있다. 임금은 자리에 누어서도 편한 잠을 못자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백성들의 목숨은 모두 임금의 한 몸에 매어있다. 이러한 때에 송별이나 하는 짓이 무엇이던가?”

그리고 곧 군정(軍正/ 군의 법무관)을 불러 물었다.

“군법(軍法)에 기한(期限)을 어겼을 때의 죄(罪)는 무엇인가?” 군정이 대답하기를
“참(斬)하는 것입니다.”

장가는 겁이 나서 종자에게 명해서 말을 달리게 하여 경공에게 알리고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양저는 종자가 아직 돌아오기 전에 장가를 참수하고 이 사실을 널리 3군(軍)에 게시하여 경계를 삼으니 사졸들은 모두 떨었다.

얼마 뒤에 경공은 사자(使者)를 보내어 부절(符節)을 보이고 장가를 용서하라고 하였다. 사자(使者)가 말을 달려 군영 안으로 들이닥치니 양저는 사자에게 말하였다.

“장수가 된 자는 진중(陣中)에 있는 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듣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군정을 향해 물었다. 

“군영 안으로 말을 달려 들어오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다. 지금 사자는 군영 중(軍營中)으로 말을 달려 들어왔다. 그 죄(罪)는 어떤 것인가?” 군정(軍正)이 대답했다.

“참(斬)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말을 듣자 사자는 크게 겁을 내었다. 그러나 양저는 “임금의 사자는 죽일 수 없다.”하고 그 사자를 태워온 수레의 말몰이 하인과 수레의 왼편 부목(駙木/ 곁마에 대는 나무)과 왼편 곁말을 베어 3군에 시위하였다. 

한편 경공에게는 사자를 보내어 이 사실을 보고하도록 하고 싸움터로 출동하였다.

사마양저(司馬穰苴)는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전략가 중의 한 인물이다.

그는 “天下雖興 好戰必亡(천하수흥 호전필망/ 천하가 비록 크게 일어난다 해도, 전쟁을 일으키기를 즐기면 반드시 망할 것이요,"

​“天下雖安 忘戰必危(천하수안 망전필위/ 천하가 비록 평안해도 전쟁을 잊고 있으면 반드시 위태로워진다."라고 말하며 평시에도 늘 국가의 대비태세를 강조하였다.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단호하게 거부할 것인가? 부당한 지시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납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이는 작게는 기업과 사회가 부패하고, 크게는 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때로는 인사권자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부당한 지시라면 충언과 함께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을 살리고, 미래의 더 높은 차원의 조직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은 무모하게 돌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다.

조직은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지휘체계에서 그 힘을 발휘하고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단 지도자의 사적(私的)인 이익을 떠난 공적인 정당한 명령이 전제(前提)되어야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왠지 정치판만 그런 것 같지 않아 그 조직은 계속 추락(墜落)함을 면치 못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조언을 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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