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移木之信(이목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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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移木之信(이목지신)’
  • 장상현 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4.01.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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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전 인문학 교수
장상현 전 인문학 교수

제39편: 정치하는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신뢰(信賴)가 있어야 한다는 ‘移木之信(나무를 옮기는 믿음)’을 잘 음미(吟味)하고 통찰(洞察)해야 할 것이다.

○글자 뜻 : 移(옮길 이) 木(나무 목) 之(어조사 지/ ~의) 信(믿을 신)

○출처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

○의미 / 비유 : ‘나무를 옮긴 사람에게 상(賞)을 주어 믿음을 갖게 한다’는 의미와 남을 속이지 않거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비유한다.

요즈음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법(法)도 도덕(道德)도 양심(良心)도 없고, 이제 국민들의 믿음(信賴)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오직 권력쟁취에만 열을 올리고 정작 해야 할 민생(民生), 안보(安保), 외교(外交), 교육(敎育), 치안(治安) 등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린 상태로, 국민들의 불안과 걱정이 날로 늘고 있는 실정이다.

춘추전국시대 위(衛)나라 태생인 공손앙(公孫鞅)은 한때 위(魏)나라 재상을 섬겼다. 그 후 그는 진(秦)나라로 와서 재상이 되었고, 진나라를 법(法)으로 다스리고자 하되 백성들이 국법을 신뢰(信賴)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새로운 국법을 공포하기 전에 국가가 신임(信任)을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법을 내어 실행하게 되었다.

그는 높이가 세 발 되는 나무를 남문(南門)에 세우고 이를 북문(北門)에 옮겨 놓는 사람에게 상(賞)으로 10금을 준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모두들 말도 안 되는 거짓이라 여기기만 할 뿐 아무도 옮기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공손앙(公孫鞅)은 다시 상금을 50금으로 올려 공시(公示)하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장난삼아 나무를 옮기자 약속대로 50금을 주었다. 그리고서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알린 다음, 마침내 국가의 법령을 공포하였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법(法)에 대해 불평을 하였지만, 법이 시행되고 10년이 지나자 길가에 물건이 떨어져도 줍는 사람이 없었고, 도둑도 없어졌으며, 백성들은 집집마다 모두 살림은 넉넉해졌고, 국가를 위한 전쟁에는 용감하였으나 개인의 싸움에는 힘을 쓰지 않았으므로 나라는 잘 다스려졌다. 이에 힘입은 공손앙은 법(法) 앞에 성역(聖域)이 없을 정도로 법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어느 날 태자(太子)가 법을 어기자 태자를 차마 벌(罰)하지 못하고, 대신 태자의 후견인 공자 건(虔)을 처벌하고, 태자의 스승인 공손가(公孫賈)마저 처벌 할 정도로 강력한 법치국가로 나라는 부국강병(富國强兵)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진(秦)나라는 공손앙의 변법개혁(變法改革)을 통해 전국시대 가장 막강한 나라가 되었다. 공손앙은 또 위(魏)나라를 공격하여 굴복시키기도 했다.

공손앙은 이 공(功)으로 상오(商於)라는 땅을 식읍(食邑)으로 받고 상군(商君)에 봉해졌다. 이로부터 상앙(商鞅)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효공(孝公)이 죽고 태자(太子)가 즉위하자 상앙은 평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공자 건의 무리들에 의해 모반죄로 몰려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이처럼 모름지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공손앙(公孫鞅)처럼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 끝까지 신의(信義)를 지켜야하고, 또 모든 사람에게 공평(公平)하게 적용해야 한다. 

신뢰가 떨어지게 되면 위정자의 통치도 막을 내리게 되는 법이다. 속된 말로 말발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아랫사람들이 겉으로는 “예”라고 하지만 돌아서면 온갖 핑계거리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신뢰가 깨진다는 것은 유리거울이 금이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한번 금이 간 거울은 원상 복귀할 수 없다. 신뢰를 잃는 사람은 더 이상 잃을 게 없기에 그런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조차도 없다. 

신뢰(信賴)란 단어는 사람(人)의 말(言)이 칼(刀)날에 묶여(束)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약속은 칼날처럼 준엄해야 한다. 그것을 지키지 못할 때 칼날은 비수(匕首)가 되어 자기를 찌르게 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게 바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의 신뢰정치(信賴政治)는 오늘날과 같은 정치불신(政治不信)의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德目)이 아닐까 싶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아니 국가든 그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신뢰가 밑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으면 좋겠다.

인류 최대의 스승인 공자께서 제자들과 정치를 논하면서 제자의 질문에 가장 크게 여기고 강조한 내용이 ‘민무신불입(民無信不立)’이다.

곧 자고(自古)로 사람은 누구나 다 죽지만, 백성들은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자고개유사 민무신불입)논어(論語) 안연(顔淵)

민생(民生), 국방(國防)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정치지도자들과 백성들 간에 신뢰(信賴)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일찍이 믿음이 있는 지도자를 만나 갖은 고생과 고난도 이겨내며 이 땅을 풍요(豊饒)의 땅으로 탈바꿈시켰다. 포화(砲火)속의 베트남에서, 열사(熱砂)의 중동에서 기지(奇智)와 열정(熱情)과 인내(忍耐)로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지도자와 함께 일구어낸 기적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정치사에 유래 없이 권력 잡기 외에는 대한민국 정치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나아가 선을 넘은 음모론, 가짜뉴스, 심지어는 테러사건까지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으니 국민이 어디 정치인들을 믿겠는가? 현역 국회의원 중 전과자가 40%에 육박한다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더 이야기할 기운조차 없다.

정치인들은 변(變)해야 한다. 자성(自省)해야 한다. 민생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일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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